베일벗는 막후 실력자 하메네이 아들, 후계자 급부상
라이시 대통령 급사 계기 최고지도자 후보 쏠리는 시선
전면 나서나, 권력투쟁 본격화할 듯…"세습 통치는 체제 위협" 논란도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하메네이의 아들에게로 시선이 급격히 쏠리고 있다.
유력한 최고지도자 후보였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면서 이란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평가받는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4)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모즈타바가 이란 정치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이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수년간 아버지의 뒤를 이를 잠재적 최고지도자 후보로 거론돼왔다고 전했다.
모즈타바는 하메네이의 여섯 자녀 중 둘째 아들로, 강경 보수 성향의 엘리트 성직자이자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혁명수비대(IRGC) 정보수장에 오른 호세인 타에브와 친교를 맺는 등 이란 보안기관 내부에 탄탄한 인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아버지 집무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NYT는 그가 실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정치 책략이라고 전했다.
강경 보수파 정치인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2005년 유력한 후보들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을 당시 이란 개혁파는 모즈타바가 선거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아마디네자드가 2009년 개혁파 지도자 미르호세인 무사비를 상대로 재선에 성공하자 부정선거 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이때도 모즈타바의 역할이 의심받았다.
당시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승계설이 돌자 일부 야권 운동가들은 "최고지도자가 되지 말고 죽기를 바란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2022년 히잡 시위가 전국을 강타했을 때에도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승계설이 제기됐다.
2011년부터 가택연금 상태였던 개혁파 지도자 무사비가 당시 하메네이에게 아들이 최고지도자를 승계할 것이라는 소문을 일축해달라고 촉구했지만 하메네이는 응답하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그러나 올해 초 후계 문제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거론되자 하메네이는 측근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위원회 소속의 성직자 마흐무드 모하마디 아라기는 하메네이가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이란의 ILNA 통신을 통해 전했다.
하지만 미국 클램슨대의 이란 연구자 아라시 아지지에 따르면, 이란 정치권에서 모즈타바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다만 많은 이란 전문가는 모즈타바가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다는 구상 자체가 '체제에 대한 위험'이라고 진단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세습 통치를 종식했는데, 혁명 이후 선출직 공무원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소수의 시아파 성직자가 또다시 세습 통치를 시작할 경우 기본 원칙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다.
중동 전문매체 암와즈의 이란 분석가인 모하마드 알리 샤바니는 "최고지도자가 세습 체제로 바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것은 그 체제가 죽었다는 것을 말한다"고 지적했다.
모즈타바는 현재 이란 최대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최고지도자 역할을 맡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신학적 지위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고지도자는 종교적 존경을 받고 신학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하메네이는 현재 85세로 고령이다.
이란에서 오는 6월28일 대통령 보궐선거가 끝나면 차기 최고지도자를 놓고 내부 권력투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모즈타바의 승계가 현실화할 경우 세습, 정통성 논란 등으로 정국이 또다시 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분석가 샤바니는 "현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수백만 명의 이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전혀 없다"면서 불투명한 정치 시스템을 비판했다.
withwi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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