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멸종위기 독수리 이동 경로도 바꿔놨다"
英 연구팀 "이동 거리·시간 증가…전쟁, 생태계에 큰 영향"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월동지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번식지로 이동해 온 맹금류 항라머리검독수리(Greater Spotted Eagles)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이동 경로와 중간 기착지 등을 다른 곳으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찰리 러셀 연구원이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22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항라머리검독수리에 부착한 GPS 장치로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이동 경로 등을 추적,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러셀 연구원은 "전쟁은 동물 행동 변화 등 환경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 연구는 독수리가 전쟁 지역을 피하기 위해 이동 경로를 변경하고 중간 기착지 활동을 줄인다는 것을 처음 정량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항라머리검독수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분류한 대형 맹금류로, 동남아, 중동, 지중해, 동아프리카 등에서 겨울을 보낸 뒤 번식기에는 중앙·동유럽, 중앙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일부 등으로 이동한다.
2017년부터 벨라루스 폴레시아에서 항라머리검독수리 20마리에 GPS 장치를 부착해 추적해온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2018~2022년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독수리들의 이동 경로와 중간 기착지 활동 등을 분석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며 독수리들은 이후 지속해서 전투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분석 결과 2022년 3월 이후 벨라루스 도착한 항라머리검독수리는 이동 경로가 이전과 크게 달라져 비행 거리가 늘어나고, 우크라이나 내 중간 기착지 활동한 시간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수리들이 번식지까지 가는 동안 비행한 거리는 전쟁 전보다 평균 85㎞ 늘어났고, 비행시간도 암컷은 전쟁 전 193시간에서 246시간, 수컷은 125시간에서 181시간으로 증가했다.
또 우크라이나 중간 기착지에 들른 독수리는 2018~2021년 18마리(90%)였으나 2022년에는 6마리로 줄었다. 특히 독수리들이 많이 이용하던 폴레시아 인근 우크라이나 기착지의 경우 2022년에는 단 한 마리도 포착되지 않았다.
러셀 연구원은 "전쟁으로 인한 행동 변화가 독수리의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키고 번식지 도착을 지연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며 "GPS 부착 독수리들은 모두 생존했지만, 이런 행동 변화는 번식기 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는 전쟁의 영향이 인도주의적 위기를 넘어서서 동물 등 환경에도 광범위하게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전쟁 복구는 생물 종과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환경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출처 : Current Biology, Charlie Russell et al., 'Active European Warzone Impacts Raptor Migration', https://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24)005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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