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환율 불안한데 성장은 기대이상"…23일 금리 동결될 듯
전문가 "美보다 앞서 낮출 이유 없어…성장전망 상향·금리인하 상충"
"연준 9월 내리면 한은 10∼11월부터"…"내년으로 넘어갈수도"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한국은행이 오는 23일에도 11차례 연속 동결을 결정하고 기준금리를 현 3.50%에서 묶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직 한은의 목표 수준(2%)까지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예상을 웃돈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 1.3%)을 근거로 한은이 같은 날 연간 성장률 전망치(2.1%)를 올려잡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경기는 더 밝게 보면서 동시에 금리를 낮추는 모순적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울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는 상황에서, 한은이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등의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려 역대 최대 수준(2.0%p)인 두 나라 간 금리 격차를 더 벌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미국이 9월께 인하를 시작하면 한은도 10월이나 11월부터 연말까지 한두 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봤다. 하지만 물가·성장·가계부채·환율 상황에 따라 연내 인하 자체가 아예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 물가 석달 만에 2%대로 떨어졌지만…"유가·농산물 여전히 불안"
19일 연합뉴스가 경제 전문가 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모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2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은 여전히 불안한 물가 흐름을 동결 전망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들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3.1%)과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4월(2.9%)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뛰는 등 2%대 안착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최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를 중심으로 둔화하겠지만, 유가 추이나 농산물 가격 강세 기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의 목표(2%)를 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아직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과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도 2%가 훌쩍 넘는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동결의 배경으로 거론했고,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금리를 낮추기에는 아직 물가가 안정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 1분기 성장 호조에 '경기 위한 금리인하' 명분 약해져
시장의 예상을 웃돈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3%)도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부었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서둘러 낮춘다'는 명분이 약해진 데다, 경기가 생각보다 호조인데 너무 빨리 금리를 내리면 수요측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조 연구위원은 "물가는 불안한데 경기가 나쁜 것도 아니고, 금융 측면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도 아직 괜찮은 상황"이라며 "따라서 금리를 왜 낮춰야 하는지 질문에 한은이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금리 인하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수입 물가를 더 올리고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우려가 있어 대외적으로도 인하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분기 한국 성장률이 강한 수출과 예상보다 견조한 소비 덕에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며 "이에 따라 한은 입장에서 물가와 내수경기 흐름을 좀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는 만큼, 금리 인하 시점도 4분기로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 "한은 10∼11월부터 연말까지 한차례 0.25%p↓" 전망 가장 많아
금리 인하에 신중한 미국 연준의 태도도 한은의 동결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3.4%)이 3월(3.5%)보다 0.1%포인트(p) 떨어지면서 시장 일각에선 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살아났지만, 연준 고위 인사 다수는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로레타 메스터 총재는 최근 한 행사에서 "새로 나온 경제 정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로 돌아간다는) 확신을 얻는 데 오래 걸릴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도 대체로 연준이 일러야 9월께, 한은은 이후 10월이나 11월에야 기준금리를 낮추며 통화정책 전환(피벗)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이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미국은 9월, 한국은 10월 또는 11월에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두 나라 모두 연내 한 차례, 0.25%p씩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한은의 연내 1회 인하를 점쳤다. 그는 "연준은 7월 인하에 나서고 대선 이후 12월 추가로 낮춰 올해 두 차례에 걸쳐 0.50%p 금리를 내릴 것 같다"며 "한국의 경우 물가 안정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10월에 한 차례 0.25%p 인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일러야 9월 금리 인하에 나서고, 인하 횟수도 연내 한 차례(0.25%p) 또는 두 차례(0.50%p)에 그칠 것"이라며 "연준의 인하 이후 한은도 인하를 고려할 수 있을 텐데, 인하 횟수는 연내 한 차례(0.25%p)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역대 최대 수준인 미국과의 금리 격차 해소가 필요한 만큼, 미국이 인하를 시작하더라도 한국이 빠르게 인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조 연구위원도 경우에 따라 한은의 금리 인하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9월 인하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물가 상황 등에 따라 4분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며 "연준이 9월 내린다면 한은은 11월 마지막 금통위에서 0.25%p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물가가 불안하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올 경우, 가계부채 급증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인하 시점이 내년으로 늦춰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한은이 많게는 연내 두 차례 정도 금리를 낮출 것으로 봤다.
장 연구위원은 "요즘 워낙 경기 지표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연준은 3분기 후반에나 인하를 시작해 연내 많이 한다면 두 번 정도 낮출 것"이라며 "한은도 2분기 성장률 등과 연준의 인하를 확인한 뒤 연내 한두 번 정도 인하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도 "연준은 9월, 한은은 10월 첫 금리 인하를 단행해 연내 각 2회씩 0.50%p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에서는 고용 부진과 물가 둔화 흐름이 2·3분기에 확인되면서 인하 명분이 커지고, 한국에서는 미국 통화정책 전환과 내수 부진에 대응하기 위한 인하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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