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유럽 은행들에 '러 사업' 철수 재촉…美 제재 우려
러시아 진출한 유로존 은행들에 서한 보내 철수 계획서 요구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이 러시아에 진출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은행들에 미국의 제재로 인한 타격을 우려하며 철수를 재촉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ECB는 최근 몇주 동안 은행들에 서한을 보내 러시아 철수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했다고 이와 관련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이 전했다.
은행들은 이르면 6월까지 러시아 철수 실행 계획서를 ECB에 제출해야 한다. 아울러 ECB의 서한은 각 은행의 러시아 사업 규모 축소 정도에 따라 재촉 압박 정도가 다르게 작성됐다고 한다.
아울러 ECB는 서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 넘게 진행 중인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유럽 기관들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ECB의 이러한 조처는 은행들이 향후 미국의 제재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ECB 측 한 관계자는 "미 당국이 제재에 들어가면 은행 시스템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자회사를 둔 은행들에 자문을 주는 한 인사는 "미국의 개입에 대한 ECB의 대응은 유럽의 미국에 대한 큰 의존성을 보여준다"며 "유럽 기업들을 평가하는데 있어 지도자가 아닌 추종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특히 ECB는 2018년 돈세탁을 조직화하고 대북 제재를 위반했다며 미 재무부로부터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차단당한 라트비아 은행 ABLV의 전철을 밟지 않길 원하고 있다.
서방 은행 가운데 러시아 사업 규모가 두번째로 큰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디트는 6월 1일까지 운영 계획에 대한 자세한 내역을 ECB에 제공할 것을 요구받았다.
유니크레디트와 ECB로부터 직접적 감독을 받지 않는 헝가리 은행 OTP는 지난해 러시아에 설립한 자회사의 이익을 분기별 배당금 형태로 송금받기 시작했다.
유럽 은행의 러시아 자회사들은 현지에서 세금을 납부하는 한 러시아 당국에 요청을 해야 순이익의 최대 절반을 모회사로 송금할 수 있다.
지난해 유니크레디트는 1억3천700만 유로(약 2천18억원), OTP는 1억3천500만 유로(약 1천988억원)를 송금받았다. OTP는 해당 배당금에 대해 "러시아 사업 규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내 최대 서방 은행인 오스트리아의 라이파이젠 은행(RBI)은 2026년까지 러시아에서의 대출을 현재의 3분의 2까지 감축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RBI는 ECB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이 은행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 대출 규모를 56%까지 줄였다.
RBI는 자산스왑 거래를 통해 15억 유로(약 2조2천억원)를 러시아에서 송금받으려 했지만, 미 재무부로부터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차단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뒤 지난주 해당 거래를 포기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 자회사에서 배당금을 받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RBI는 "러시아 당국은 현지 시장에 남아 사업 목표를 달성해야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매우 명확히 하고 있다"며 "우리는 (러시아) 사업을 크게 줄여왔고, 적극적으로 매각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는 러시아에 남겠다는 약속과는 상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당국은 RBI의 러시아 사업 확장을 우려하고 있다. 이 은행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 중순까지 2천400건의 구인광고를 냈는데, 상당수가 사업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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