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제국주의 꿈' 하얼빈 찾은 푸틴…구소련 위상 회복 '야심'

입력 2024-05-18 09:53
'러 제국주의 꿈' 하얼빈 찾은 푸틴…구소련 위상 회복 '야심'

19세기 제정 러시아, 만주 진출 노리고 개발…러 정교회 흔적 남아

푸틴, 현지 교회·하얼빈공대 방문…전쟁 명분 다지고 중국과 밀착 강화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중국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19세기 제정 러시아가 꿈꾼 만주 식민지 건설 계획의 상징과도 같은 중국의 도시 하얼빈을 방문해 지정학적 '야망'을 드러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이 방문한 하얼빈은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가 당시의 만주 지역에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개발한 도시다.

이 계획에 따라 하얼빈은 제정 러시아의 주요 철도기지로 자리매김했으며 러시아 이주민도 대거 유입되며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후 러시아가 러·일 전쟁에 패하면서 러시아의 식민 야욕은 무산됐지만, 하얼빈 곳곳에는 당시 세워진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여전히 남아 러시아 제국주의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처럼 과거 제국주의 시절 러시아에 대한 상징성이 깊은 하얼빈을 방문한 것은 '강한 러시아'에 대한 그의 야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러시아 정교회를 기반으로 한 국내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WSJ은 이번 하얼빈 방문은 지난 3월 대선에서 압승한 이후 구소련 시절 러시아의 위상을 일부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이념적, 실질적 고민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하얼빈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 한 곳을 찾아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내며 러시아 정교회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사라 리카르디-스와츠 노스이스턴대 종교학 조교수는 이날 푸틴의 교회 방문은 "단지 국제적 맥락에서 러시아의 힘을 키우는 것뿐 아니라, 러시아 정교회 교리를 국가를 이끌어가기 위한 자신의 윤리 기준으로 자리 잡게 하겠다는" 그의 목적을 드러낸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이러한 러시아 정통 교리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사상적 명분이 되어주고 있다면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지 그가 러시아 소유라고 믿는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전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정신적인 지지 기반을 모으기 위한 전쟁으로도 여긴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의 하얼빈 방문은 단지 종교적 상징에만 그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군사 협력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하얼빈공화대학(HIT)을 찾으며 양국 간 군사 협력 강화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의 국방 분야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HIT는 중국군과의 협력 관계로 인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도 오른 곳이다.

호주 싱크탱크 전략정책연구소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HIT는 연구 예산의 절반을 국방 부문 응용에 사용했으며 졸업생의 30%는 국방 부문에서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HIT는 러시아의 바우만 모스크바 공과대학과의 기술 협력을 비롯해 러시아 내 여러 대학과도 연계를 맺고 있으며, 핵 개발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몇몇 북한 과학자들도 여기서 공부했다고 WSJ은 전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러·일 전쟁 소련군 전사자 기념비에 헌화했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지역적 협력에 관한 엑스포와 학회에도 참석했다.

알렉산더 코롤레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선임 강사는 WSJ에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단지 '미국에 함께 맞서자'는 수준의 지정학적 차원에서의 협력을 넘어서 보다 더 실질적인 협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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