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추진했지만…원화외평채 발행, 상반기엔 무산될 듯
국회서 기술적 기반 입법 난항…연이자 비용 1천300억원 절감 기대
(세종=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정부가 21년 만에 추진한 원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이 올해 상반기엔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원화 외평채 발행의 기술적 기반이 되는 전자등록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외국환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은 원화 외평채 전자등록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국고채와 재정증권처럼 원화 외평채도 국채의 발행 및 등록절차를 적용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외평채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이 발행하는 채권이다. 정부는 원화가 절상되면 외평기금의 원화를 매도해 달러를 매입하는 식으로 외환시장 안정을 꾀한다. 외평채는 외환시장 안정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수단인 셈이다.
정부는 2003년까지 원화 표시 외평채를 발행하다가 국고채 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고채와 통합했다.
이에 따라 외평기금은 외화 매입에 필요한 원화를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으로부터 빌려왔다. 공자기금이 국고채 발행으로 조달한 원화다.
그 결과 외평기금이 직접 단기 원화 외평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것보다 더 큰 비용이 들었다. 외평기금에서 빌려온 원화가 주로 공자기금이 10년물 국고채로 조달한 자금인 탓이다. 장기물의 금리는 통상 단기물보다 높다.
정부는 이에 외평기금 수지를 개선한다는 목표로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원화 표시 외평채 발행을 추진하면서 올해 예산안에 이를 담았다. 국회는 올해 외평채 발행 한도를 18조원으로 확정하고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원화 외평채 발행의 기술적 기반이 되는 전자등록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올해 상반기 외평채 발행은 무산되는 모양새다.
전자증권법에 따르면 주식·사채뿐만 아니라 국채도 전자등록이 돼야 한다. 국고채와 재정증권은 한국은행이 등록하고 발행·유통은 한국예탁결제원 명의로 진행되는 체계다.
기획재정부는 원화 표시 외평채가 이런 국채 발행 및 등록 절차를 적용받지 못하면, 한은이 새로 전산시스템을 설계·개발해야 하므로 외평채의 원활한 발행과 유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원화 외평채 발행이 무산되면 당초 기대하던 이자 비용 절감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 10년간 국고채 10년물의 조달 금리는 연평균 2.43%로 단기물인 통안채 1년물(1.72%)과 0.17%포인트(p) 차이가 났다.
공자기금으로부터 빌리는 대신, 원화 외평채 1년물을 발행하면 올해 발행 한도 18조원을 기준으로 연간 최대 1천278억원의 이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셈이다.
법 개정이 계속 늦어지면 올해 외평채를 발행할 수 있는 날이 줄면서, 발행 규모가 제한되고 높은 금리로 발행해 국가 재정에 더 큰 부담이 되는 면도 있다.
최근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법안 개정을 통해 외평기금의 방파제 역할을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기재위는 검토보고서에서 "원화 표시 외평채 역시 여타 국채와 같이 한국은행에서 채권의 발행 및 등록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개정안의 입법 취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법체계의 정합성 및 통일성을 고려할 때, 원화 표시 외평채 발행 및 전자등록에 관한 사항은 '외국환거래법'이 아닌 '전자증권법' 개정 사항인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이에 비춰보면 전자등록을 담은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대신 일몰 규정을 두는 방안도 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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