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사이언스] 손 감촉 느낀 기계는 뭐라 답할까…과학 보는 예술가의 시선은
KIST·고등과학원·수림문화재단 '과학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AVS)' 전시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운무가 자욱한 공간. 외롭게 서 있던 로봇팔이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조금씩 움직이며 팔 끝에 달린 장치로 붉은빛의 패턴을 내뿜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계속 변화하는 패턴과 함께 팔을 움직이며 계속해 바뀌는 기계음이 마치 인간에게 무언가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은 듯했다.
9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종로구 수림큐브 지하에 설치된 이 작품은 관객이 로봇 손과 상호 인식을 의미하는 악수를 하면 그 손을 느끼며 얻은 수치가 로봇 팔에 전송되고, 로봇 팔은 이에 반응해 약 100개의 솔레노이드(원통 코일)를 움직이며 다양한 패턴을 무작위로 만들어낸다.
사람끼리 악수할 때 상대의 손에서 모양과 감촉, 움직임 등 다양한 것을 느끼고 반응하듯, 기계도 이를 센서를 통해 읽어내고 인간처럼 자신만의 언어로 응답하는 셈이다.
이 작품은 금속을 주제로 기계장치를 만들고 빛과 움직임을 구현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준수 작가와 인간 손의 생체역학적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며 인공손을 개발하는 황동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 협업한 결과다.
수림큐브에서는 KIST와 수림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과학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AVS) 2023-2024' 전시가 이달 18일까지 열린다.
이곳에는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이 바꾸는 삶의 영역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 방앤리는 인공지능(AI)이 완벽히 통제하는 자율주행 차량이 낸 우발적 사고를 놓고 논의하는 AI의 모습을 애니메이션과 설치품 회화 연작으로 선보였다.
인간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를 개발하는 박종길 KIST 선임연구원과 협업하며 뉴로모픽 칩을 장착해 완벽해진 AI가 오히려 멸종한 동물을 마주치며 예상 못 한 정보를 파악하다 자율주행차로 치는 사고를 겪는 모습을 상상한 결과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AI가 낸 우발적 사고에 대해 다른 AI 들로부터 청문회를 당하며 스스로를 변호하는 모습도 청문회에 함께 참여한 것처럼 볼 수 있었다.
민찬욱 작가가 정신과 전문의인 조철연 고려대 교수와 협업해 전시한 디지털 휴먼은 자신을 여러 개 두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디지털 휴먼도 감정선이 중요하다는 조 교수의 의견을 토대로, 디지털 휴먼이 관객과 다른 디지털 휴먼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감정을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효용이 다하면 픽셀화가 되며 사라지는 모습도 사람이 아닌 디지털 휴먼이 사라지는 방식은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이 전시는 과학자와 예술가가 만나 만들어낸 새로운 시각의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한 시도로, 5년째 이어지며 올해는 고등과학원도 전시에 참여하는 등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다.
고등과학원의 전시는 서울 동대문구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으로 '앗상블라주 Assemblage: 조립된 세계'를 주제로 4개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멀어 보이는 예술과 과학의 만남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다.
김수정 수림문화재단 큐레이터는 "작가들이 KIST 연구자들의 연구를 보고 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김준수 작가도 황 책임연구원을 협업 1순위로 꼽아 성사된 경우"라고 말했다.
전시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새로운 시선을 주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날 관객 2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소개하는 자리를 가진 황 책임연구원은 "프리즘만 해도 공학자는 어떻게 통제해 빛을 잘 제어할지 고민하지만, 예술가는 오히려 빛이 퍼지는 걸 더 고려하더라"며 "같은 제품이지만 사용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신선했다"고 말했다.
김 큐레이터는 "작가들은 전문가와 협업해 작업의 방향성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좋은 기회를 얻는 것 같다"며 "과학자들도 예술가의 시선에서 연구가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보며 연구에 영감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황 책임연구원은 "예술 작품도 전시해 관객을 맞아들이고 공학 기술도 누군가 써야만 의미가 있는 만큼 모두 사람을 위한 것들"이라며 "그런 측면에선 접점이 있다"고 말했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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