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대통령 당선인, 北불법무기 적발 진두지휘 '이력'
물리노, 안보장관 시절 청천강호 사건으로 국제사회 주목
'부패 중죄'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 후광…친미성향, 건설 붐 추진 전망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5일(현지시간) 중미 파나마 대통령선거에서 다른 7명의 후보를 여유 있게 제치며 대권을 거머쥔 호세 라울 물리노(64) 당선인은 과거 한반도 문제와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불법 무기와 물자를 싣고가다 적발된 북한 선박 사건 수사를 주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율사 출신으로, 2010∼2014년 리카르도 마르티넬리(72) 정부에서 안보장관을 지낸 그는 2013년 북한 청천강호 사건을 처리한 주요 의사결정권자였다. 현재 치안부로 개편된 파나마 안보부에서는 경찰과 국경수비대, 이민청 업무를 관장했다.
북한 청천강호는 지대공 미사일 체계와 미그-21 전투기 2대 등 신고하지 않은 무기 240톤(t)을 설탕 포대 아래에 숨긴 채 파나마운하를 지나다가 당국에 적발됐다.
이 구형 무기류는 쿠바에서 선적됐는데, 쿠바는 "북한에 수리를 맡긴 것"이라는 취지로 당시 북한에 대해 내려졌던 제재의 위반이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파나마 당국은 "곧바로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유탄발사기 실탄이 컨테이너에서 확인됐다"며 선박과 선원을 억류했다.
이를 두고 한국과 미국 등은 유엔의 강력한 조사를 촉구한 반면, 쿠바와 콜롬비아 등 중남미 일부 국가에선 이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며 미국 등의 개입을 비판하기도 했다.
물리노 당시 장관은 "파나마 운하가 중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맞지만, 국가로서의 파나마는 중립이 아니다"라며 유엔 조사를 지지하는 파나마 정부 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적발된 선박에 대한 조사는 유엔 조사관들의 몫이라면서 전문가 파견을 유엔 안보리에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런 강경 입장은 물리노 당선인 개인 이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법학과 출신인 그는 공직 입문 전 해상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관련 분야 실무에 능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파나마 검찰은 불법무기 운송 등 혐의로 청천강호 선장 리영일과 선원 30여명을 기소했고, 이중 리영일은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을 받았다.
그러나 리영일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이미 출국한 뒤여서 실제 파나마에서 형을 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엔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는 청천강호 사건에 관여한 진포해운(싱가포르 소재)과 북한 소재 해운업체 원양해운관리회사(OMM) 등을 제재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물리노 당선인은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전 마누엘 노리에가(1934∼2017)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친 것으로도 파나마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외교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그는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을 정치적 후견인으로 여기고 있다고 현지 일간 라프렌사는 전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물리노 당선인은 애초 두 번째 집권을 노리던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이 과거 부패에 대한 중죄로 대선 후보 자격을 상실하면서 뜻하지 않게 '대타'로 이름을 올렸다.
당선인 선거캠프에서는 특별한 공약을 새로 내놓는 대신 '물리노는 마르티넬리'라는 슬로건으로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그대로 흡수하는 전략을 펼쳤고, 이러한 득표 전략은 적중했다.
대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았던 물리노 당선인은 스스로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제가 여기(여론조사 1위)에 있는 이유"라고 말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물리노 당선인이 다소 권위주의적 리더십 스타일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치안 장관 시절 교통 방해 시위대를 "쓰레기"라고 지칭해 구설에 오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親) 미국 성향의 중도우파 정치인인 물리노 당선인은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의 과거 정책을 계승·발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자신의 고향 마을(코스타리카 국경 지역)까지 연결되는 대규모 철도 건설, 연금 시스템 개혁, 시장 친화적 개방 정책 추진 등이 그 대표적 공약이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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