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5년 만에 유럽행, 왜?…'中 제재 연대' 균열 노린다
EU의 전기차·의료기기 제재 맞서 회원국 각개격파로 해법 찾기
"중국의 입장에 더 공감할 EU 회원국 끌어들이는 노력"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주 5년 만에 유럽 땅을 밟는 건 중국을 겨눈 제재의 연대를 허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각종 경제·안보 이슈로 미국과 갈등과 대립을 이어가는 가운데 유럽연합(EU)과도 대(對)러시아 관계는 물론 전기자동차·태양광 패널·풍력터빈·전동차·의료기기 문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물론 유럽 내 균열을 염두에 둔 발걸음이라는 것이다.
실제 연말 대선을 앞두고 '중국 때리기'가 득표 전략에 유리한 상황에서 미국이 EU와의 연대로 한 대중국 압박·제재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차단해야 할 처지다.
특히 미래 산업이라고 할 인공지능(AI)용 또는 슈퍼컴퓨터 및 군사 응용 프로그램으로 전환될 수 있는 첨단기술의 중국 접근을 막겠다는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에 EU가 가세하는 걸 막는 게 급선무다.
내달 5일부터 10일까지 시 주석의 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 3국 방문은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외신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30일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달리 EU 회원국들은 중국 투자를 바라고 있으며, 중국 역시 EU에 더 많은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되 그 반대급부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진핑 유럽행의 배경이라고 짚었다.
싱가포르국립대 충자이안 교수는 시 주석의 유럽행에 대해 "중국 입장에 더 공감할 수 있다고 여기는 EU 회원국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방문지 3국 모두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중국 우호국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주요 EU 회원국이면서 대미 자주 외교를 표방해온 프랑스는 중국과 만남이 잦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럽의 미국 '추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으며, '중국 감싸기' 행보도 피하지 않아 왔다. 프랑스는 물론 나아가 EU의 대미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함께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 요구에 지속해서 반대했으며, 결국 작년 5월 미국을 디리스킹으로 이끈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중국 디커플링은 중국을 빼고 공급망을 재편해 사실상 '왕따' 시키려는 것이고, 디리스킹은 중국발(發) 위험 요인 제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점에서 천양지차다.
블룸버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틀 예정의 시 주석 방문 기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라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압력을 행사하도록 시 주석에게 요구하면서도, 정상 간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유년 시절 자기 할머니와 추억이 있는 피레네산맥의 모처로 시 주석을 초대하는 일정을 잡는가 하면 엘리제궁 만찬을 준비하는 등 정성을 들인 의전 계획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외교가에선 시 주석의 프랑스 방문을 계기로 중국이 코냑 등 프랑스산 브랜디 반덤핑 조사를 멈출 가능성도 제기한다. 어차피 EU의 중국산 전기차 반덤핑 조사를 빌미 삼은 맞불이었다는 점에서 취소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EU가 집행위원회 차원에서 중국산 전기차·태양광 패널·풍력터빈·전동차·의료기기 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회원국 별로 입장 차이가 적지 않다. 따라서 중국은 회원국 맞춤 외교로 'EU 연대'를 허물려 한다는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지난 14∼16일 중국 방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비용이 상승한 이후 어려움을 겪는 독일이 중국 시장 재공략을 통한 경제 회생을 노렸고, 중국은 독일을 고리로 EU의 제재 전열 허물기를 하려는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 직후 시 주석의 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 방문 일정이 확정된 걸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통신은 시 주석이 유럽 체류 기간에 중국의 과잉 생산이 문제라고 압박하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강력한 반대 논리를 설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 이외에 세르비아와 헝가리 방문은 '중국 편 다지기' 차원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 헝가리는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핵심 국가이다. 국제무대에서 이른바 '스트롱맨'들과 밀착을 강화해온 유럽의 극우성향 지도자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시 주석에게 강한 호감을 표시해온 인물이다.
시 주석의 헝가리 방문은 EU의 중국산 반보조금 정책 등을 희석하거나 차단하는 데 헝가리가 역할을 해주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물론 그 대가로 중국은 헝가리에 일대일로 사업에서 큰 혜택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0년 이후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헝가리의 최대 투자자로 부상한 상태다. 헝가리는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시 주석은 1999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에 의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이 폭격당한 사건 25주년이 되는 날인 5월 7일 세르비아를 방문해 정서적 공감을 하면서 세르비아 지원 보따리를 펼치는 '당근 외교'를 할 것으로 관측된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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