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슬롯머신에? 영국 도박 게임 불법 사이트서 유통
서경덕 교수 "게임사에 항의할 것"…유튜브에 사설 도박 사이트 광고 그대로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호국 영웅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을 소재로 만들어진 외국산 슬롯머신 게임이 국내 사설 도박 사이트 등지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영국 게임사 '프라그마틱 플레이'는 지난해 9월 온라인 슬롯머신 게임 이순신(Yi Sun Shin)을 출시했다.
홈페이지에 누구나 플레이할 수 있게 공개된 '이순신'의 데모 버전 게임을 실행하자, 중국풍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과 함께 거북선, 활, 방패연, 대포 등이 그려진 문양이 나타났다.
베팅 금액을 설정하고 버튼을 누르자 릴(슬롯머신의 세로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게임머니를 따자 "이순신이 돌아왔다",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승리는 나의 것이다" 같은 어색한 한국어 대사가 흘러나왔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해외 게임사에서 제작한 도박 게임에 대한민국 영웅인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것은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향후 게임사 측에 항의해 이순신 장군을 뺄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이순신' 슬롯머신 게임 제작사 '프라그마틱 플레이'는 영국 도박 위원회(UGC)의 라이선스를 받은 카지노 게임 전문 제작사다. 영국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카지노나 스포츠 베팅 영업이 합법이다.
문제는 명백히 도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온라인 카지노 영업이 전면 불법인 국내에서도 버젓이 홍보·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에 '이순신' 슬롯머신 게임을 검색해 보면 한국어로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홍보하는 영상을 수십 종 이상 찾을 수 있었다.
당첨 금액이 게임머니가 아닌 원화로 표시되고, 계정에 있는 링크를 누르면 카카오톡 대화방이나 사설 도박 사이트로 이동하는 명백한 불법 온라인 도박 광고다. 한 도박 사이트 홍보 계정은 문제의 게임을 오히려 '애국 슬롯'이라면서 홍보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튜브 내 도박, 음란물, 불법 식·의약품 등 정보 등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심의를 거쳐 불법정보 삭제, 접속 차단 등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도 버젓이 올라와 있는 도박 사이트 홍보 영상들에서 보듯, 코로나19 기간 대폭 커진 사이버 도박 시장을 단속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지난해 10월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심위에 신고·접수된 불법 도박사이트는 2022년 기준 12만7천732건으로 2019년(9만4천253건)과 비교했을 때 약 35% 증가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이 기간 온라인 불법도박 시장 규모는 약 55조원에서 약 70조원으로 약 27%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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