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이창용 "사과값,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 아냐"
"기후 때문인데 통화·재정으로 해결 안 돼…농산물 수입 고민할 때"
"하반기 금리 인하, 예단 어렵다…물가 경로 불확실성 커 지켜봐야"
(서울=연합뉴스) 민선희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사과 등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해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농산물 수입 개방을 검토할 시점이라는 소신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금과 같은 정책을 계속할지, 농산물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저를 포함한 금통위원들은 지금 상황에서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타냈다.
농산물 가격과 유가 등 소비자물가지수(CPI) 전망 경로에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한두 달은 더 헤드라인 물가가 예상대로 움직이는지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내릴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이 피벗(정책 전환) 시그널을 준 상황에서는 국내 물가 상승률에 대한 고려가 더 크다"면서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도, 다음에 내릴 수도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 물가 수준 자체가 높아서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물가 수준을 고려해서 물가 상승률 목표를 현재의 2%보다 아래로 낮추는 것은 고려하지 않나.
▲ 현재 물가 수준이 높기 때문에 물가 상승률을 한동안 낮게 유지하는, '에버리지 인플레이션 타기팅'(average inflation targeting)은 오히려 변동성을 키울 수도 있다.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우리는 농산물과 주택 등 물가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전기와 교통 등 유틸리티 부문은 상대적으로 낮다. 중앙은행이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 등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산물이 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인데, 최근 2∼3개월 동안 우리 CPI 오른 것의 30% 정도가 농산물의 영향을 받았다. 과실이 CPI 비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지만, 과실 가격 상승이 최근 CPI 오른 것의 18% 정도다.
당연히 농산물 가격, 사과 가격이 오르면 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고, 정부가 나서서 보조금도 주고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그런데 기후변화로 작황이 변했는데 재배면적 늘리고 재정을 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재배면적을 늘렸는데 기후가 좋아서 농산물 생산이 늘어나면 가격이 폭락해 생산자는 어려워지고 또 재정을 투하해 보조하게 된다. 반면 기후가 나빠졌다고 하면, 재배면적이 크더라도 생산량이 줄어 보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참 불편한 진실인데,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 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기후변화 등이 심할 때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 수립할 것이냐, 이게 국민의 선택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많은 분이 유통을 개선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시는데, 기후 변화 때문에 생산량이 줄면 유통을 아무리 개선해도 한계가 있다. 이제는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등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변화에서 우리 국민의 합의점이 어디인지 등을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기준금리 전망은.
▲ 지난 2월과 같다.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여섯 분 중 다섯 분은 3개월 뒤에도 3.50%에서 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나타냈고, 한 분은 3.50%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섯 분은 근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목표 수준에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 기조를 지속해야 할 필요성을 말씀하셨다. 나머지 한 분은 공급 측 요인 불확실성에도 기조적인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내수 부진이 지속될 경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
-- 소비자물가와 관련해서, 근원물가와 헤드라인물가 중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나.
▲ 그동안은 헤드라인물가와 근원물가가 거의 같이 움직였는데, 본격적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어떤 지수에 더 무게를 두고 고려하는지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통화정책은 수요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급 측 요인 많이 작용하는 (품목을) 뺀 근원물가를 보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또 여러 물가의 기대 심리는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근원물가 상승률은 예측한 대로 둔화하고 있는데, 농산물 가격과 유가가 오르면서 헤드라인물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물가 예측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한 두 달 더 헤드라인물가가 예상대로 움직이는지 볼 필요가 있다.
-- 미국 연준의 정책 금리 인하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는데, 한은 금리 인하 가능성은 어떻게 판단하나.
▲ 1월에 사견을 전제로 상반기 내 금리 인하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었는데, 6개월 시계에 대해 말씀드리면, 저를 포함한 금통위원들은 지금 상황에서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유가 등이 안정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초 예측한 대로 연말 2.3% 정도까지 둔화한다고 하면, 금통위원 전체가 하반기에는 금리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유가 등을 이유로 기존 예상 경로인 2.3%보다 높아진다면, 하반기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 있다.
한은이 금리 인하 깜빡이를 켰다는 표현도 쓰시더라. 깜빡이는 바꾸려고 준비한다는 뜻인데, 저희는 깜빡이를 켤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다. 데이터를 보고 결정할 것이다.
-- 한은이 미국 연준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선택지도 고려하고 있나.
▲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기조에서는 환율 등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 통화정책이 미국 통화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통화정책에 주는 영향이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탈동조화되고 있다. 한은도 반드시 미국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환율 영향 등 국내 요인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지난해보다는 커졌다. 미국이 피벗 시그널을 준 상황에서는 국내 물가 상승률에 대한 고려가 더 크기 때문에, 이에 따라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도, 뒤에 할 수도 있다.
--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60원대까지 올랐는데, 과거보다 시장 불안이 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 현재 환율은 단순히 원화만 절하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달러 강세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과거와 달리 국민연금, 서학개미 등 해외 투자자산이 늘어서 기본적으로 환율 변동으로 경제 위기가 오는 구조가 아닌 것도 있다. 최근 1,360원 선까지 오른 것은 미국 피벗 기대가 뒤로 밀리면서 달러가 강세를 나타낸 가운데,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특히 더 절하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변국 통화에 프락시 되다 보니 펀더멘탈보다 과도하게 절하된 면이 있지 않나 유심히 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특정 레벨의 환율을 타깃하지는 않지만, 주변국 영향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나 인해 환율이 과도한 변동성을 보이면 시장 안정화 조치를 통해 환율을 안정시킬 여력이 있고, 방법도 있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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