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원죄' 독일, 귀화시험에 '과거사 책임' 묻는다
"유대인·이스라엘 보호에 대한 책임감, 국가 정체성의 일부"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2차대전 당시 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라는 원죄를 짊어진 독일이 귀화시험에 유대인과 이스라엘, 반(反)유대주의 등에 대한 질문을 추가한다.
26일(현지시간) 슈피겔,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독일 내무부는 성명을 내고 실전 문항으로 채택될 수 있는 300여개의 질문으로 이뤄진 귀화시험 목록이 곧 개정될 예정이며, 유대인과 이스라엘 등에 대한 지식을 묻는 새 문항이 추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시사지 슈피겔은 새로운 문항에는 '유대인 예배당의 명칭은?', '이스라엘 건국 시기는?', '독일이 이스라엘에 대해 특수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유는?', '홀로코스트 부정은 독일에서 어떤 처벌을 받는가?' 등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단순 지식부터, 독일의 과거사 책임과 관련한 질문까지 망라된 것이다.
낸시 패저 독일 내무장관은 "과거 독일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를 배반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그 결과 우리에게는 유대인과 이스라엘 보호라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이러한 책임감은 오늘날 우리 정체성의 일부이며, 이런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독일 시민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패저 장관은 "우리는 선명한 '레드라인'(넘어서면 반드시 부정적 대가를 치러야 할 기준선)을 그은 것"이라며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인류에 대한 다른 형태의 경멸은 귀화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이번 조치의 취지를 설명했다.
독일 연방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옛 동독에 위치한 독일 작센 안할트주가 이스라엘 국가가 존재할 권리를 글로 써 확약하는 것을 귀화의 필수 요건으로 삼은 후 몇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33개의 질문지로 이뤄진 독일 귀화시험은 독일 시민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 가지 필수 조건 중 하나로, 응시자들은 1시간 이내에 최소 17개의 문제에 올바로 답해야 통과할 수 있다.
독일 정부는 작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래 친팔레스타인, 반유대주의 목소리가 분출하며 독일에서 2천 건이 넘는 반유대주의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단속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작년 10월 하순 의회 연설에서 "반유대주의는 독일에서 설 자리가 없으며, 이에 반대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를 막기 위한 법 집행 과정에서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나 전시회, 북토크 등의 행사를 엄격하게 제한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팔레스타인을 오히려 차별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수도 베를린의 경우 경찰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아동들을 추모하는 한 어린이의 1인 시위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의 상당수를 금지했는데, 베를린 경찰은 집회가 혐오 선동, 반유대주의 발언, 폭력 미화와 선동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금지 이유로 들었다.
한편,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며,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반유대주의 자체는 범죄는 아니지만, 범죄의 동기로 반유대주의가 작용했을 경우 선고 때 가중처벌 될 수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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