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선박 계속 때리는 中 물대포…美-필리핀 방위조약 시험대
"美, '무장 공격' 간주해 필리핀 더 지원할 계기"…美, 방위조약 재확인
中 물대포 공격, 남중국해 분쟁에 '뉴노멀화' 시도…'회색지대 전술'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중국의 잇따른 물대포 공격이 필리핀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사실 본격적인 무력 공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강도 높은 도발 행위인 중국의 물대포 공격이 잦아지면서 미국이 1951년 필리핀과 체결한 방위조약에 따른 개입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23일 중국의 해안경비대 함정들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목제 보급선에 강력한 물대포를 발사했으며, 이는 8개월 새 벌어진 6번째 공격"이라고 전했다.
이 공격 이후 필리핀 외교부는 자국 주재 중국대사관 공사를 불러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중국 해경은 "필리핀 선박들이 중국 영해를 침범해 법에 따라 통제 조처를 했다"고 맞섰다.
중국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의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 부근에서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필리핀이 1999년 해당 암초에 좌초한 자국 군함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해병대원을 상주시키고 물자를 보급해왔으나, 중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 발사와 선박 충돌로 접근을 차단하는 일이 반복되고 필리핀도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토머스 암초에 대해 필리핀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된다는 입장인데, 이는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긋고 이 안의 약 90%가 자국 영해라는 중국 주장과 충돌한다.
문제는 물대포 공격이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해양 경비선을 동원해 필리핀 선박을 밀어내면서 '성능 좋은' 물대포 공격을 병행하고 있다.
실제 지난 23일에도 중국 물대포 공격으로 필리핀 목제 보급선 선원 3명이 크게 다치고 선박 자체가 사실상 사용 불능 수준으로 부서졌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 통신은 중국의 물대포 공격이 미국과 필리핀 간 방위조약을 발동시킬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장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어 미국이 필리핀을 더 지원토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지난 주말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이 남중국해의 불안정을 조장하고 항행의 자유를 방해하고 있다면서 무력 공격이 발생할 경우 필리핀을 방어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물대포 공격이 전형적인 '회색지대 전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도쿄국제대학의 제프리 오르다니엘 교수는 "외부의 무력 공격이 있을 때만 미국과 필리핀의 방위조약이 발효되는 데 그런 건 없었다"며 중국의 물대포 공격은 그런 점을 노린 회색지대 전술(본격적인 전쟁 수준에는 못 미치지는 정치적 목적 등을 띤 도발 행위)이라고 봤다.
외교가에선 현재로선 미국이 중국과 필리핀 간 남중국해 갈등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작지만,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미국 입장도 변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소재 대니얼 K. 이노우에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의 알렉산더 부빙 교수는 중국이 물대포 공격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새로운 일상(뉴노멀)"으로 만들려 시도하고 있다고 짚었다.
부빙 교수는 그러면서도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갈등을 군사적 충돌의 문턱 아래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9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방위조약이 발동되려면 "실존적 위협"에 직면해야 할 것이라면서 필리핀은 "냉철하고 신중하게 중국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한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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