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불경기'…밀레이 정책 성토장 된 아르헨 대규모 집회
군사 쿠데타 48주년, 대통령궁 앞으로 몰려든 인파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절대 다시는 안된다(Nunca Jamas)"
아르헨티나 역사의 수치이자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1976년 군사 쿠데타 반발 48주년일인 24일(현지시간) 현지 인권·시민단체, 노조, 시민 수십만명이 대통령궁 앞 5월 광장에 몰려 들었다.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가 군사 쿠데타 전에 이미 '불순분자'들에 의한 군인 상대 테러가 발생했으며 군사독재 정권의 피해자는 알려진 3만명이 아니라 수천명 수준이라는 주장으로 논란을 빚으면서 밀레이 정권 출범 이후 열린 첫 집회인 올해 행사에는 예년보다 더 많은 군중이 운집했다.
밀레이 정부는 고물가 및 불경기로 인한 국민 불만 여론을 의식한 듯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경찰을 배치하지 않았고, 대통령궁 옆으로 양쪽 길가에 쳐진 바리케이드 외에 살수차, 경찰기동대 등도 이날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날 찾은 5월 광장에는 지팡이를 든 어르신부터 젊은 부부, 어린아이들 그리고 청년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과 각종 단체 회원들이 행사 시작을 한참 앞둔 오전 11시부터 모여 있었다.
부모와 함께 온 이스마엘(8)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묻자 "우리의 권리를 위해 나왔어요"라고 했다.
이스마엘의 모친인 심리학자 록사나(42)는 "군사 독재정권의 끔찍한 만행을 부정하는 현 정부의 태도에 반대한다"고 말했고, 9살 딸과 함께 나온 아구스티나(39·대학교수)도 "아이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데리고 왔다"고 전했다.
8살 단테도 "1976년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왔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그들의 어머니들이 아직도 찾고 있다"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여기에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단테의 할머니 델리아(61)는 "이웃 주민이 군 독재정권의 피해자였다. 단테는 공립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서도 배웠고 내가 설명을 해줬다"고 말했다.
소규모 시민단체 소속인 대학생 마가(20)는 "3만명이 고문당하고 실종되고 살해됐는데 이를 부정하고 있는 현 정부에게 군사독재 사상의 회귀를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각종 단체와 일반 시민들은 "절대 다시는 안돼"(Nunca Jamas)"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의 대로를 행진해 5월 광장에 모였다. 시위는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연단에 오른 '5월 광장 어머니회' 에스텔라 데 카를로토 회장, 아돌포 에스키벨 아르헨티나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은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면서 현 밀레이 정부가 군사독재 만행을 부정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밀레이 취임 후 불거진 다양한 개혁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5월 광장 어머니회와 할머니회'의 상징인 하얀 두건, 낙태법 옹호자들이 흔든 초록 손수건, 국공립 무료 교육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국립대학교와 국립과학위원회(CONICET)를 옹호하는 하얀 가운 등 주제별 '색깔 시위'도 이뤄졌다.
현지 언론 페르필은 이번 집회가 군사 정권 쿠데타 기념일을 넘어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는 행사 성격을 띠게 됐다고 보도했다.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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