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봉쇄는 대량학살"…러, 독일에 역사 공세
유대인만 개별배상 '이중잣대' 비판…"우크라전 선전에 활용" 분석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독일과 갈라선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땅에서 자행된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끄집어내며 '역사 공세'에 나섰다.
20일(현지시간) 타스통신과 독일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최근 "제3제국(나치 독일)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를 제노사이드(대량학살)로 공식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외교 서한을 독일 정부에 보냈다.
러시아 측은 "독일은 식민지 시대 범죄를 대량학살로 인정하면서도 소련 국민을 대상으로 한 레닌그라드 봉쇄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범죄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같은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도 나치 범죄 피해자들의 권리를 확고히 옹호할 것이며 독일이 실질적 반응을 모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레닌그라드 봉쇄는 1941년 9월부터 1944년 1월까지 872일 동안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한 나치 독일의 작전이다. 당시 이곳 주민 250만명 가운데 70만∼140만명이 숨졌고 대부분은 굶어 죽은 것으로 역사학계는 추정한다.
독일 정부는 1953년 8월 소련에 배상금을 지급해 남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19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병원 현대화에 1천200만유로(약 175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전쟁이 끝난 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감히 용서를 구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며 사죄했다.
그러나 독일이 2008년 레닌그라드 봉쇄 피해자 가운데 유대인 생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배상하기로 하면서 러시아 측으로부터 이중 잣대이자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봉쇄 당시 러시아 참전군인들은 지난해 9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보낸 편지에 "나치의 잔인한 계획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고 썼다.
러시아의 역사 공세는 나치에 대한 소련의 국민적 저항을 부각해 우크라이나 전쟁 선전에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베를린자유대의 역사학자 로베르트 킨들러는 일간 베를리너차이퉁에 "레닌그라드 봉쇄는 인내와 궁극적 승리라는 전쟁 신화의 핵심"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지를 모으는 데도 이상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탈나치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지난달 말 타우러스 미사일로 크림대교를 폭파하는 방안을 논의한 독일 공군 장교들의 대화 녹취가 공개되자 러시아 당국자들은 "완전히 탈나치화하지 않았다", "오랜 라이벌 독일이 다시 원수로 변했다"며 격분했다.
독일 외무부는 지난 1월 '레닌그라드 해방' 80주년을 맞아 "국제법을 위반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병원 현대화 등) 조치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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