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억류 선교사 아들 "부친 생사를 모르는게 제일 힘듭니다"
납북 선교사 최춘길씨 아들 진영씨, 북한 인권보고서 발간 10년 행사서 증언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모든 걱정이 소용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생사가 제일 저를 힘들게 합니다"
11년째 북한에 억류된 납북 선교사의 아들이 유엔에서 가족의 생사 확인 요청조차 외면하는 북한의 반인권적 태도를 고발하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최춘길(65) 선교사의 아들 진영(34)씨는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주제네바 한국대표부가 주최한 유엔 인권이사회 부대행사에서 자신이 맞닥뜨린 냉혹한 북한의 인권 현실을 증언했다.
최춘길씨는 김정욱·김국기 선교사 등과 함께 10년 넘게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이다. 중국 단둥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최춘길씨는 북한 주민 구호 활동을 하다 2014년 북·중 접경 지역에서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진영씨는 실종된 부친이 납북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작년 말 정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10여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가 통일부로부터 부친이 북한에 체포돼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큰 충격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북한은 최춘길씨가 중대한 간첩 혐의가 있다며 2015년 무기 노동교화형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욱·김국기 선교사도 비슷한 죄목으로 장기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생사 확인·서신교환 등 인도적 요청마저 북한은 외면했다.
진영씨는 다른 납북 피해 사례도 소개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그는 "아버지 소식을 접한 뒤 북한이 탈북민을 돕던 김정욱·김국기 선교사를 2013년과 2014년에 불법적으로 체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언급했다.
또 일본인 납북 피해자인 요코다 메구미, 2016년 억류됐다가 이듬해 석방 직후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 등 해외 사례를 들며 "이들의 가족들도 소중한 딸과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진영씨는 "북한 정권에 의해 강제 이별하는 가족들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최소한의 인권 처우인 가족의 생사 확인·서신교환·면회가 이뤄지고 나아가 재회할 기회를 가지도록 국제사회가 도와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말을 맺었다.
진영씨는 이날 행사 후 연합뉴스에 "납북 소식을 들은 뒤 잠자리에 들면 오늘 하루 아버지가 무사히 넘겼을지를 걱정한다"고 말했다.
또, 부친의 생사를 알 수 없으니 이런 번민마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가장 미칠 것 같다고 울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유엔 발언대에 서기로 결심한 이유를 묻자 "처음에는 제가 나서도 될 일인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나름대로 자료를 찾고 다른 억류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납북자 문제를 이젠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납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할 기회가 또 주어지면 함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의 보고서 발간 10주년을 돌아보면서 향후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윤성덕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대사와 아만다 고얼리 주제네바 호주대표부 대사, 이신화 북한 인권 국제협력 대사, 엘리자베스 살몬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 인권 특사 등이 참석했다.
이신화 대사는 "진영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 정권의 납치와 억류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인권침해 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적 위기는 국제사회에 광범위한 피로현상을 초래했다"면서 "우리가 '잊히는 위기'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관심과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외교·안보 정책과 통합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행사를 연 주제네바 한국대표부의 윤 대사는 "획기적인 COI 보고서가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북한 인권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거운 마음으로 인정한다"며 "인권침해를 해결하고 그 책임을 물으려는 노력을 우리는 확고히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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