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와 연대?…구속된 독일 적군파 지지시위
"체제가 테러다" 주장…"'영원한 청년' 대중문화 현상"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일요일인 17일 낮 12시(현지시간) 독일 니더작센주 베흐타에 있는 여자교도소 담장 앞에 시민 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곳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진 옛 서독 극좌 무장투쟁 조직인 '적군파'(RAF) 멤버 다니엘라 클레테(65)와 연대한다며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도시 게릴라는 좌파 정치의 일부"라며 클레테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역사와 연대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9일 베를린 시내에서도 비슷한 집회가 열렸다. '수감자·수배자와 연대'를 내건 이 집회에는 약 600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다니엘라에 자유를', '이 체제가 테러다' 등 구호를 적은 현수막을 앞세우고 클레테의 은신처 근처 거리를 행진했다.
'적군파 3세대'로 분류되는 클레테는 1998년 조직 해체 이후 '생계형' 무장강도를 벌여 수배됐다가 지난달 26일 베를린의 은신처에서 체포됐다.
수사당국은 클레테와 함께 강도 행각을 벌인 에른스트폴터 슈타우프(69)와 부르크하르트 가르베크(55)를 쫓고 있다. 1970∼1980년대 독일 사회를 공포에 빠뜨린 적군파는 게릴라전을 통한 공산주의 혁명을 주창했으나 실제로는 서독 정·재계 인사를 중심으로 30여명을 암살해 테러조직으로 간주된다.
좌우를 막론하고 극단주의 세력을 극도로 경계하는 독일 사회는 전직 테러리스트이자 강도 수배자들인 적군파 잔존세력과 연대한다는 집회가 잇따라 열리자 당혹스러운 기색이다.
지난 5일 발생한 테슬라 독일공장 정전 사태와 맞물려 좌익 극단주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불칸그루페(화산그룹)라는 이름의 극좌단체는 자신들이 테슬라 공장 인근 송전탑에 불을 질렀다며 배후를 자처했다.
낸시 패저 내무장관은 연대집회에 대해 "적군파는 34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미화할 구석이 전혀 없다"며 "살해된 이들의 유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1초 만이라도 생각해보라"고 비판했다. 함부르크사회연구소의 좌익 극단주의 연구자 볼프강 크라우스하어는 테슬라 정전 사태를 언급하며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신호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고 경고했다.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미련 또는 동경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적군파는 1960년대 반(反)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청년층이 대거 뛰어든 이른바 '68혁명'을 사상적 뿌리로 삼는다.
시사매체 슈피겔은 "1세대 적군파는 요절했고 책과 영화에 영원한 청년으로 남아있다. 이런 방식으로 적군파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중문화 현상이 됐다"며 "1970년대를 살았던 이들은 적군파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을 연관짓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7일 교도소 앞 집회 참가자 가운데 절반 정도는 클레테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나머지는 20∼30대였다고 일간 타게스차이퉁은 전했다.
클레테가 은신하던 베를린의 아파트에서는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실탄이 든 탄창, 현금 4만유로(약 5천800만원), 금괴 1.2㎏이 발견됐다. 클레테는 수사관들이 들이닥치자 화장실에 가서 가르베크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낸 뒤 유심칩을 변기에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은 이후 가르베크 등의 은신처로 알려진 장소를 급습했으나 허탕을 쳤다. 가르베크 등 나머지 적군파 3세대 멤버들에게는 최대 15만유로(약 2억2천만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