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토 최남단 마라도도 방사선 '안전'…제주 방사선감시소 가보니
원안위, 환경방사선감시기 238개소 설치해 전국 방사선 영향 실시간 감시
국외 방사능 감시 첨병 기지 제주, 인공방사선 핵종 파악도 유리해
(제주=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현재 환경방사선 준위 시간당 0.078 마이크로시버트(μ㏜), 정상."
지난 8일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도 가장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공터. 서 있기도 힘든 해풍이 불어오는 가운데 남자 성인 가슴께만큼 오는 크기의 환경방사선감시기가 홀로 버티고 서서 주변 방사선 정보를 실시간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계기판에는 0.06~0.09 μ㏜ 수준의 정상 범위 내 방사선량이 계속해 표시되고 있었다.
송명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책임연구원은 "무인으로 운영되는 이 감시기가 5초마다 주변 방사선을 측정하고 15분 평균 데이터를 대전 서버로 전송한다"며 "지금까지 방사선 관련 비상 상황이 나타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KINS는 7일과 8일 후쿠시마 오염수 등 국토 최남단 방사선 영향을 가장 먼저 포착하는 제주 지역의 방사선 감시소와 측정소를 기자단에 공개했다.
◇ 전국 238곳 환경방사선 감시 촘촘…후쿠시마·중국·북핵도 감시 대상
현재 전국에는 238개 환경방사선감시기가 설치돼 전 국토의 토양과 공기 중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감시하고, 비상사태를 조기 탐지하기 위해 이를 분석하고 있다.
2011년까지는 그 수가 71개였고 그마저도 원전 인접 지역이나 인구 밀집 지역 등에 주로 설치됐지만, 그해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전국토 환경방사선감시 강화를 위해 수가 빠르게 늘었다. 올해도 6곳에 추가할 예정이다.
국외의 방사선 영향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마라도 방사선감시기는 2012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감시소 50곳을 늘리면서 함께 설치됐다.
송 책임연구원은 "과거에는 국내 사고에만 집중해 설치하다 보니 원전 주변이나 대도시 인근에 많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자체마다 1개씩은 확충하는 계획이 수립됐다"며 "2028년 296기를 목표로 촘촘하게 설치하고 있다"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원전 등 인접국 원전을 감안해 충남 방향으로도 확충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북한의 핵실험도 주요 감시대상 중 하나로, 2022년부터 원안위가 북핵 경계 태세에 들어가 비상근무함에 따라 감시망의 감시 시간 간격도 15분에서 5분으로 줄여 운영 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감시소의 전국 확충을 추진하면서 전기 확보를 위한 장소 선정이나 유지보수 등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KINS는 설명했다.
마라도의 경우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설치를 위해 땅을 파는 데만 여러 허가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허가가 쉽고 전기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마을회관 주변에 우선 설치했다가, 2021년에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오게 됐다고 한다.
감시소의 데이터는 모두 KINS로 보내지는데, 3년 평균값보다 0.1μ㏜ 이상 초과한 수치가 나오면, 원인을 밝혀내 원안위에 보고하게 된다.
송 책임연구원은 "비가 내리면 먼지를 씻어내려 2배 가까운 수치가 나오기도 하고, 눈이 내리면 지표 방사선을 차폐해 수치가 떨어지기도 한다"며 이런 상황을 고려해 수치를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전국 15곳 지방방사능측정소 운영…현무암질 제주, 인공방사능 핵종 파악 유리해
원안위는 238개 방사선감시기 외에도 대전 KINS 중앙방사능측정소 한 곳과 전국 15개 대학에 위탁한 지방방사능측정소를 운영해 전국 환경방사능 감시망을 구축 중이다.
이중 제주대에 설치된 제주지방방사능측정소는 1967년 서울, 대전, 대구, 부산과 함께 가장 처음 운영된 곳이다.
다른 인구 밀집 지역과 달리 제주도가 선택된 이유는 인공방사능 핵종을 평가하기 유리한 지질학적 특성 때문이다.
최인희 KINS 환경방사선감시평가실장은 "제주도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화강암 기반인 내륙보다 토양에서 나오는 방사선 수치가 0.02~0.03μ㏜ 정도 낮다"며 "다른 핵종을 구분해 찾아내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7일 방문한 제주 지방방사능측정소는 제주대 원자력과학기술연구소 2층에 마련돼 있었다.
건물 옆에는 방사능 분석장치와 대기 부유 먼지, 강수를 채집할 수 있는 장비들이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있었다.
이곳에서도 환경방사선준위 시간당 0.077μ㏜를 나타내고 있었다.
제주 지방방사능측정소는 낙진이나 빗물, 수돗물에 대한 감마 방사능 분석과 함께 주식인 쌀이나 배추 분석, 쑥과 솔잎 같은 상대적으로 방사능이 잘 달라붙는 지표식물에 대한 방사능 분석을 수행 중이다.
이 측정소를 운영하는 원자력과학기술연구소는 1978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술협력사업 지원을 받아 1982년 설립된 이후 제주 지역 물이나 토양, 식품 등의 방사능 분석을 도맡고 있다.
이날 방문한 연구소 내 시료준비실과 분석실은 각종 장비와 시료 분석장치가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지금은 덜한 편이지만, 지난해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영향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큰 제주도의 특성상 의뢰가 물밀듯 들어왔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정만희 제주대 교수(제주지방방사능측정소장)는 "2022년만 해도 한 곳에서 한 차례 의뢰하는 정도였다면 지난해는 6회 이상이었다"며 "측정 인력은 3명 정도인데 지난해 의뢰가 밀려올때는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 해수 감시도 지속 강화…"해수 핵종 농도, 후쿠시마 사고 전후 큰 차이 없어"
전국 환경방사능감시망이 담당하는 육상 감시 외에도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로 중요성이 커진 해수 감시도 계속해 강화하고 있다고 원안위는 설명했다.
KINS에서는 우리나라 주변 원근해 해수와 해양생물, 해저퇴적물의 세슘과 삼중수소 등 주요 방사성 핵종을 분석하고 있다.
정밀 분석 지점의 경우 2020년 22개에서 2024년 40개 지점으로 늘렸고, 월 2회 신속분석 지점도 지난해 33개에서 올해 38개 지점으로 확대했다고 원안위는 설명했다.
광어와 같은 해양 생물도 연 2회, 해양퇴적물은 연 1회 분석하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전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와 그 이후인 2011년부터 2023년까지의 핵종 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중수소의 경우 사고 전 1ℓ당 0.038~0.743㏃이던 것이 사고 후에는 0.058~0.458베크렐(㏃)로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세슘의 경우도 1ℓ당 1.19~4.04m㏃에서 0.64~4.77m㏃로 비슷했다.
김용재 KINS 책임연구원은 "해수 속 삼중수소와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동위원소 농도를 비교해보면 후쿠시마 사고 이전 수준과 비교해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염수 방류가 일어나도 지금의 농도가 오히려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핵종의 경우 반감기 때문에 저절로 농도가 내려가고, 부유물이나 수중 물질에 부착하면서 줄어든다"며 "오염수가 방류되고 있지만, 태평양에 워낙 해수 양이 많기 때문에 (농도가)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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