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안보회의날 나발니 급사…"트럼프 이어 푸틴까지 유럽 위협"
우크라 전황 악화·美 아시아 선회 조짐에 유럽 각국 발 동동
'재무장 자체 군사력 확보 위한 유럽 대응 늦었다' 지적도
우크라 "무기 생산 늘릴 시간 벌고자 목숨 바치겠다" 꼬집어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유럽 최대 안보 분야 국제행사인 뮌헨안보회의(MSC)가 암울한 분위기 속에 18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우크라이나의 전황이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지난 75년간 유럽 안보의 핵심 축이었던 미국에 더는 전적으로 의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된 결과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혔던 러시아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MSC 개막 당일 급사하고, 이튿날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격전지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했다고 선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서방 지도자들이 사흘간 뮌헨에 모인 가운데 푸틴은 그들에게 '제재, 규탄, 봉쇄시도 등 지금껏 해 온 무엇도 지금의 세계질서를 뒤엎겠다는 그의 의지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했다.
이 매체는 러시아가 막대한 인명피해를 무릅쓰고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한 것이나 나발니가 수상쩍은 죽음을 맞은 것은 모두 "내달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푸틴이 어떤 반대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걸 더욱 명확히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1년 전만 해도 러시아의 전략적 패배가 임박했다던 유럽 각국 참석자들은 이번 회의 기간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MSC 개막으로부터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주제는 미 하원이 우크라이나 원조 예산안을 끝내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로 넘어갔다.
하원 공화당을 배후 조종해 예산안 처리를 가로막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직접 언급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가는 대화의 상당수는 올해 11월 미국 차기대선에서 승리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탈퇴하고 "(러시아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하도록 두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위협을 배경에 두고 진행됐다고 WP는 전했다.
일부 EU 회원국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도 유럽의 반응이 지나치게 느렸다고 토로했다.
새로운 대결의 시대를 맞아 재무장에 나선다는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발맞출 수 있을 정도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니콜라이 덴코프 불가리아 총리는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유럽 각국이 힘을 모아 자체적인 군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여기에는 3∼5년, 또는 최장 1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트럼프가 재선돼 나토 동맹체제를 뒤흔들기 전에 유럽이 재무장을 완료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다.
MSC에 참석한 나토 회원국들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높인 회원국이 전체의 3분의 2에 이르렀다고 자평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방위비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의 방위비를 GDP의 4% 수준으로 높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주저하다가 "3%나 혹은 3.5%에 이를 수도 있다"고 답했다고 WP는 전했다.
프랑스 안보 전문가 프랑수아 에이스부르는 "이건 (미·소 냉전 종식 후) 30년간 이어진 저(低)투자의 결과를 돌려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MSC에선 나발니의 미망인이 깜짝 참석해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책임을 물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그러나 가능한 제재 대부분이 이미 시행 중이란 이유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데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은 나발니가 옥중에서 사망할 경우 '파괴적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푸틴 대통령에게 경고한 바 있지만, MSC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미국 정부 당국자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고 WP는 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우방과 협력국들이 자체 방위산업을 일깨우는데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당신네 방위산업이 생산량을 늘릴 시간을 벌기 위해 2024년 내내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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