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세계 최악 뉴델리 대기오염 해결 안되는 '진짜' 이유
(뉴델리=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겨울로 접어들면 인도 수도 뉴델리의 대기 오염도가 매우 높아진다.
보통 '세계 최악 수준'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도에서 겨울 기간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대기 오염이 심각한 것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1년부터 3년간 특파원으로 일할 때보다 요즘 대기질이 조금 더 나쁜 것 같다.
마음 놓고 외출도 못 한다. 대다수 현지인은 '별것 아니다'라고 여기는 듯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바깥 생활을 한다.
얼마 전 방에 둔 공기정화기 필터를 교체하다가 깜짝 놀랐다. 필터가 '연탄' 수준으로 변색한 것이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대개 1년 주기로 교체하는데, 6개월도 안 돼 바꾼 것이다.
델리의 대기오염 상황은 공기질지수(AQI)로 측정된다.
AQI는 나라별 집계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인도 AQI는 좋음(0∼50), 만족(51∼100), 보통(101∼200), 나쁨(201∼300), 매우 나쁨(301∼400), 심각(401∼500) 등 6단계로 나뉜다.
델리의 AQI는 겨울 들어 보통 300이 넘는다.
가물에 콩 나듯 200 이하일 때도 있다. 이럴 때면 절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인도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델리의 1일 평균 AQI의 경우, 1월은 279, 2월 225, 3월 217, 4월 255, 5월 212, 6월 190, 7월 87, 8월 93, 9월 104, 10월 210, 11월 320, 12월 319다.
델리의 연도별 1일 AQI는 2018년 225, 2019년 215, 2020년 185로 나아지다가 2021년과 2022년은 209로 조금 높아졌다. 연중 '나쁨' 수준이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람 활동이 줄어든 점을 감안해야 한다.
델리의 겨울철 1일 평균 AQI만 따져보면 200∼300대임을 알 수 있다.
델리 겨울철 대기오염의 '주범'은 주변 지역인 하리아나주와 펀자브주 농촌지역에서 추수 후 볏짚 등 잔여물을 태우는 행위라고 현지 언론은 분석한다.
추수 잔여물을 태우지 않으면 퇴비 등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데, 그러려면 작업 인건비가 든다.
그러니 농민들로서는 예전처럼 그냥 태우는 게 가장 손쉬운 잔여물 처리 방법일 것이다.
추수 잔여물 외에 난방·취사용 폐자재 소각으로 인한 독성물질 확산, 저감장치 없는 발전소·공장 가동, 노후차량 매연 등은 '종범'에 해당한다.
추수 잔여물 처리 등은 구조적인 문제다.
사회와 정부가 나서 이해 당사자들과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 주체는 누구여야 하나?
이를 파악하기 위해선 델리의 행정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구 2천만명의 델리는 시(市)이면서 공식 명칭은 국가수도지구(NCT)다. 델리 NCT는 연방직할지이기도 하지만, 델리 행정부가 일반적인 주(州)와 흡사하게 기능해 '주총리'가 선출된다.
'뉴델리'는 델리시의 일부분인 디스트릭트(구와 비슷한 개념)에 해당한다.
뉴델리는 영국이 건설한 델리 내 작은 신도시 형태지만 의회와 대법원 등 국가 핵심기관이 집결해 있어 인도 수도 전체를 뉴델리라고도 부른다.
뉴델리 이외 델리 지역을 '올드 델리'로 부르기도 한다.
델리와 주변 위성도시인 가지아바드, 구루그람(옛 구르가온), 노이다 등을 합쳐 국가수도지역(NCR)으로 칭한다.
우리로 치면 NCR은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하는 수도권에 해당한다.
문제 해결의 주체는 일단 델리 주정부가 될 것 같다.
대기가 행정 구역별로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어서 주체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델리 주총리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반부패 운동을 통해 이름을 날린 아르빈드 케지리왈이 맡고 있다.
그는 연방정부를 이끄는 인도국민당(BJP) 소속이 아니다.
이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연방정부와 델리 주정부는 사사건건 충돌한다.
BJP 측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델리 주정부의 비리 의혹을 조사하면서 케지리왈 주총리까지 겨냥하고 있다.
아무튼, 문제 해결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공기오염을 100% 없애는 게 아니라 저감하는 정도일 것이다.
오염도를 낮추려면 델리주가 이끌고 주변 펀자브주 등이 도와야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결론임에도 주정부들이 각기 이해관계에 얽혀 해법을 도출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리더십 부재'로도 볼 수 있다.
모디 정부는 독립 100주년인 2047년에는 '선진국'이 되도록 노력하자며 국민을 독려한다.
하지만 수도권 대기오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누가 인도를 선진국으로 인정할까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한 현지 신문은 사설을 통해 인구 14억명의 나라에서 대기오염과 같은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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