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청산' 대형 악재 파장은…다른 업체 '눈덩이 효과' 우려도

입력 2024-01-29 17:38
'헝다 청산' 대형 악재 파장은…다른 업체 '눈덩이 효과' 우려도

전문가들 "中금융시장 파문", "단기적으로 경제에 매우 안좋아"…中경제·부동산 시장 파장 촉각

일각 "홍콩법인만 해당돼 파장 제한적"…주식시장 '관망' 속 비구이위안 등 관련 업계 여파 주목



(베이징·서울=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홍제성 기자 = 지난해부터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려온 중국 경제에 연초부터 대형 악재가 불거졌다.

홍콩 법원이 29일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에 대해 청산 명령을 내린 것이다.

헝다는 중국의 주요 부동산 업체 가운데 처음인 2021년 말 역외 채권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며 중국 부동산 위기의 진앙으로 떠올랐다.

이번 홍콩 법원 결정으로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덩치 큰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의 믿음이 깨졌다는 시각이 나오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중국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헝다에 대한 청산 명령이 침체에 빠진 중국 부동산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다만 그 파장은 예상보다는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 한때 '아시아 2위 부자' 올랐던 헝다, 청산 대상 '불명예'

쉬자인(徐家印) 회장이 1997년 광둥성에서 설립한 헝다는 부동산으로 사업을 시작해 금융, 헬스케어, 여행, 스포츠, 전기차 사업을 아우르는 재벌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부동산 재벌인 쉬 회장은 2017년 기준 보유재산 420억달러(약 57조원)로 아시아 부자 2위까지 올랐다.

회사 역시 한때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했지만, 문어발식의 사업 확장,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신사업 투자 등과 맞물려 부채를 산더미처럼 쌓았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리스크를 줄이고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중국 당국의 각종 조치에 역풍을 맞았다.

국유 은행들이 앞다퉈 부동산 프로젝트 관련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헝다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 것이다.

결국 헝다는 주요 부동산 업체 중 가장 먼저인 2021년 말 역외 채권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시작으로 주택건설 중단, 하도급업체 공사대금 미지급 등으로 중국 부동산 위기의 진앙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진 부동산 개발업체로, 총부채는 천문학적 수준인 약 443조원(2조3천900억위안·약 3천270억달러)에 달한다.

기업의 심각한 경영난과 맞물려 쉬 회장 재산도 현재 약 18억달러(약 2조4천억원)로 쪼그라들었다.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이 쉬 회장을 비롯한 기업 주요 인사들을 구금해 사법처리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볼 때 이미 '손절'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헝다는 지난해 9월 공시를 통해 "쉬자인 회장이 법률 위반 범죄 혐의로 법에 따라 강제 조치됐다"고 밝힌 바 있다. 쉬 회장에 앞서 헝다의 일부 전현직 직원도 당국에 체포·구금됐다.



◇ '헝다 신호탄' 이후 중국 부동산 침체 심화…줄줄이 위기 직면

사실 중국 경제는 최근 2~3년 사이에 부동산과 금융 시장의 위기로 멍들어왔다.

헝다에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 기준 업계 1위인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디폴트 위기에 처하면서 시장 전반으로 공포감이 번졌다.

또 원양(遠洋)집단(위안양그룹29일 대형·시노오션), 완다(萬達) 등 다른 부동산 업체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디폴트 위기에 놓였거나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자산관리회사 중즈(中植)그룹 등 금융권으로까지 위기가 전이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가격은 폭락했고 중국 당국이 여러 부양책을 폈지만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았으며, 결국 중국 경제는 지난해 내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을 걱정해야 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이 GDP(국내총생산)의 20%를 훨씬 넘고 중국인 재산의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처럼 부동산이 대표적인 재산 증식 수단인 중국에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연쇄적으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동산 침체는 당국의 공식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가통계국이 지난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2023년 연간 부동산 개발투자는 9.6% 하락해 침체한 부동산 경기는 여전히 회복될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당국은 부동산 시장 침체 속 자금난에 허덕이는 부동산 업체들을 위해 수익성이 양호한 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금으로 부채를 갚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부동산 경기가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 시장, 헝다 청산이 미칠 파장에 '촉각'

업계에서는 이번 법원 결정이 향후 중국 경제와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 정책입안자들이 심화하는 위기를 억제하려 노력하는 와중에 이날 홍콩 법원의 판결은 중국 금융 시장에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태가 부동산 업계와 부동산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로이터에 따르면 싱가포르 리서치업체 크레디트사이츠(CreditSights)의 니콜라스 천 애널리스트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경우 구조조정 방향은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반적인 시장 정서는 의심할 바 없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게리 응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통신에 "법원 결정은 헝다 입장에서는 끝이 아니라 청산의 시작"이라며 채권자들이 자산 압류에 나선다면 주주들의 상황은 나빠질 것이고 다른 개발업체들에도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가 나타날지 투자자들은 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엔트 캐피털 리서치의 앤드루 콜리어 이사도 "헝다 청산은 중국이 부동산 거품 진압을 위해 극단적 결말도 용인한다는 신호"라며 "이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좋지만, 단기적으로는 매우 어렵다"고 짚었다.

다만 이번 청산 결정이 헝다그룹 전체가 아니라 그룹의 홍콩상장 주요 법인 중 하나인 중국헝다(中國恒大<03333.HK>)에만 적용되는 조치라는 점에서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 정관신문에 따르면 중국의 한 전문가는 "중국헝다와 헝다그룹의 국내 및 해외 자회사는 독립적인 법인이기 때문에 해외 법인(중국헝다)이 청산되더라도 그룹의 국내 주요 사업은 일정기간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예측했다.

이미 헝다의 경우 청산 수순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파다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해석도 있다.

중국 부동산 분석가인 차이훙페이는 로이터에 "헝다는 자체적으로 청산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고 회장도 체포됐다"면서 이번 조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홍콩 법원 결정이 내려진 이날 중국 본토와 홍콩의 주가는 엇갈렸지만, 등락폭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상하이종합지수와 선전성분지수는 각각 전장 대비 0.92%, 2.42% 하락 마감했고 상하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 300 지수도 0.90% 빠지는 등 중국 본토 증시는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홍콩 항셍지수, 홍콩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들로 구성된 홍콩H지수(HSCEI)는 각각 0.64% 오른 채 거래됐다.

업계에서는 헝다 청산은 예고된 이벤트란 점에서 향후 중국 경기 회복에 대한 시선은 업계 1위 비구이위안 쪽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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