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빈손으로 어떻게…고향 못 가요" 中서민들 '우울한 춘제맞이'
노점상들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손님 더 없어…희망조차 없는 지금이 더 힘들어"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이번 춘제(春節·중국의 설) 때도 고향에 갈 수 없어요. 선물이라도 사 들고 가야 하는 데 수중에 모아놓은 돈은 없고…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요"
기자가 단골로 찾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한 작은 이발소에서 4년째 이발사로 일하는 올해 22살 하오(?)모 씨는 춘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3년간 귀향하지 못했던 그는 올해 춘제 때는 고향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3년간 이동을 엄격히 규제했던 방역 통제 정책인 '제로 코로나'가 작년 1월 해제된 터라 열심히 일하고 아끼면 농사일하는 부모님에게 드릴 돈을 얼마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에도 작년 한 해 중국 경제 부진이 지속하면서 중국인들은 선뜻 지갑을 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올해도 선양에서 홀로 춘제를 지내기로 결정했다.
하오씨는 "하루에 찾아오는 손님이 고작 3∼4명"이라며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보다 손님이 더 줄었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고객들이 이발하는 횟수부터 줄인다"고 푸념했다.
그는 "아직 수습생이어서 내가 받는 요금은 숙련된 선배 이발사의 절반 수준인 18위안(3천400원)"이라며 "한 달을 벌어 숙식비를 제하고 나면 적자라서 그동안 알뜰히 모았던 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인 후루다오(葫蘆島)를 떠나 객지에서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는 "아무리 애써도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몇 달 새 눈에 띄도록 홀쭉해진 그에게 운동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루 식사를 저녁 한 끼로 줄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몸이 계속 불어나 살을 빼기 위해서"라면서도 "식비도 줄일 수 있다"고 속내의 일단도 털어놨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춘제가 마냥 반갑지 않은 것은 노점상들도 마찬가지다.
선양 바이(八一)공원 근처에서 매일 새벽 열리는 자오스(早市)에서 두부를 파는 장(張)모 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보다 손님이 더 없다"며 "주변 상인들도 다 똑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지린성이 고향이라는 그는 "춘제 때 귀향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이번 춘제 때 이동 인구가 역대 가장 많을 것이라는 데 어떤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고향에 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상인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좋아질 거라던 희망조차 사라진 지금이 더 견디기 힘들다"며 "방역에 쏟아부은 돈 일부만이라도 서민들에게 나눠줬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낫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25일 새벽 찾아간 이 자오스에는 생필품을 사러 나온 손님들이 많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된 직후였던 작년 이맘때 상인들과 손님들이 어우러져 왁자지껄하고 생기가 돌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은 더욱 곤궁한 처지에 몰렸다.
수년간 일했던 한국 기업이 최근 철수하면서 실업자 신세로 춘제를 맞이하게 된 30대 여성 진(金)모 씨는 "최근 많은 한국 기업이 철수하거나 인력을 줄였다"며 "한중 관계가 좋은 시절 한국으로 유학을 떠나 주변의 부러움을 샀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내 차 두 대가 있었는데 한 대는 처분했다"며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중 관계가 개선될 날이 오지 않겠느냐"며 "예전처럼 한중 관계가 돈독해지고, 많은 한국 기업이 다시 중국에 진출해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한 20대 중국 청년은 "중국몽(中國夢·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실현이 임박했고,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강대국이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경제가 오히려 퇴보하고, 서민들의 형편은 더 팍팍해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러나 "넓은 땅에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가 많은 중국은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 이 고비를 넘기면 더 도약할 것"이라며 "개혁개방 이후 단일대오를 이뤄 급성장했던 중국의 저력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p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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