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곳곳 농민 트랙터 시위로 '몸살'
경유세 인상·EU의 환경 정책에 "경쟁력 떨어진다" 불만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유럽 곳곳에서 비용 부담과 지원 축소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 르파리지앵 등에 따르면 프랑스 농민들은 지난 18일부터 남서부 툴루즈에서 바욘을 잇는 64번 고속도로를 트랙터, 짚 더미 등으로 봉쇄했다.
이날은 프랑스와 스페인을 잇는 9번 고속도로의 남쪽 요금소가 완전히 막혔고, 툴루즈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124번 국도도 부분 봉쇄됐다.
전국농민연맹의 아르노 루소 회장은 이날 아침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해 "농민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주 내내, 그리고 필요한 기간 프랑스 전역에서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도로 봉쇄에 나선 건 재정적 부담과 유럽연합(EU)의 지나친 농업 정책 규제 때문이다.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해 9월 비(非)도로용 경유에 대한 면세가 화석 연료 소비를 부추긴다며 올해부터 2030년까지 면세 혜택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농업 분야의 면세 종료는 다른 분야보다 늦게 적용한다지만 농민들로선 경유 외 대안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 셈이다.
농민들은 EU가 제시한 공동농업정책(CAP)의 토지 휴경 의무에도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발효된 새 공동농업정책에 따르면 농민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경작지의 최소 4%를 비생산적 농업생태 기반 시설(울타리, 둑 등)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 또 일정 기간엔 벌목 등도 금지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해야 CAP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루소 회장은 "수입 농산물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땅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며 지나친 EU 규제 때문에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르노 가이요 청년농민회장도 일간 르피가로에 "우리는 너무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 일주일에 하루는 행정 처리에 소비하며 추가 제약에 대한 재정적 보상은 없다"고 따졌다.
농민의 불만이 새해 연초부터 곳곳에서 터지자 마크롱 정부는 부랴부랴 '농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르메르 장관은 전날 TF1 방송에 출연해 "농민의 고통과 분노를 이해한다"며 "너무 복잡하고 번거롭고 때론 적용 불가능한 기준들은 과감히 단순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도 이날 저녁 농민연맹과 청년농민회 관계자를 만나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보겠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2018년 11월 정부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한 대대적인 '노란 조끼' 시위가 이어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농민들의 분노는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네덜란드와 폴란드, 독일을 거쳐 루마니아에서도 농민들이 비도로용 경유에 대한 점진적인 세금 인상과 유럽의 '그린 딜'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린 딜'은 EU가 2050년 기후중립을 달성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환경 구축을 목표로 제시한 청사진으로, CAP도 그 일환이다.
영국에서도 이날 런던 의회 앞에서 농민들이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이 자행하는 불공정 구매 계약에 항의해 시위에 나선다. 이들은 농업을 포기해야 할 위험에 처한 농민 비율이 49%에 달한다며 49개의 허수아비를 시위에 동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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