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지구 묘지 최소 16곳 훼손…전쟁 범죄"

입력 2024-01-20 20:44
"이스라엘, 가자지구 묘지 최소 16곳 훼손…전쟁 범죄"

CNN "시신도 파헤쳐"…이스라엘군 "인질 시신 수색한 것"

인근 유대인 묘지는 '멀쩡'…가족무덤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 분노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묘지 최소 16곳을 훼손했다고 미 CNN 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묘지 등 종교 시설을 해당 장소가 군사적 목적과 연관됐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CNN이 분석한 가자지구 위성 사진과 소셜미디어(SNS) 사진, 그리고 가자 내부에서 이스라엘군과 동행 취재하며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린 뒤 전초기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자 북부 가자시티에 있는 샤자이자 묘지를 각각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10일에 촬영한 위성 사진을 비교해보면, 지난해 10월까지 묘비와 나무 등이 줄지어 있던 묘지에는 이제 이스라엘군 차량과 이들을 둘러싼 모래 언덕만이 남아있었다.

묘지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최근에 불도저가 지나간 자국도 있었다.

가자 남부 도시 칸유니스 동쪽에 있는 바니 수헤일라 묘지에서도 비슷한 훼손 흔적을 볼 수 있었다.

CNN은 이 묘지에 불도저가 지나간 흔적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몇 주에 걸쳐서 점차 늘어났다고 전했다.



이 외에 가자 북부 자발리야 인근에 있는 알 팔루자 묘지와 가자시티 동쪽 알 투파 묘지 등에서도 묘비가 깨지거나 탱크나 불도저가 지나간 자국이 역력했다.

CNN은 취재팀이 지난주 가자 중부 알부레이즈 지역을 직접 방문해서도 불도저가 무덤들 사이로 지나간 흔적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CNN이 확인한 훼손된 묘지 16곳에 대한 질문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다만 특정 묘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군이 종종 하마스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묘지를 공격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일부 묘지들에 이스라엘군이 탱크를 세워놓거나 전초기지로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고 CNN은 전했다.

최근 전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자 남부 칸유니스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묘지에서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는 모습이 촬영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은 해당 작업이 하마스에 잡혀간 인질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의 무덤이 사라진 팔레스타인인들은 분노와 슬픔에 잠겼다.

팔레스타인 파타 정당 대변인인 문터 알 하이에크는 CNN에 2014년 가자 전쟁에서 사망한 딸과 할머니의 무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1월 초 가자시티의 한 묘지에 있는 딸 디나의 무덤에 찾아갔으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며 "점령군이 무덤을 파괴하고 불도저로 밀고 갔다. 끔찍한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팔레스타인 시인 모삽 아부 토하도 최근 가자지구에 있는 형제를 통해 남동생의 무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CNN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주민이 아닌 외국인이나 유대인이 묻힌 묘지는 훼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CNN에 따르면 훼손된 알투파 묘지로부터 채 1㎞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영국과 호주 군인들이 묻힌 묘지는 100일 넘게 이어진 전쟁에도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가자 중부에 있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묻힌 묘지에서도 이스라엘군은 탱크를 무덤을 피해 세워두는 등 팔레스타인인 묘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짚었다.

인권 변호사인 무나 하다드는 CNN에 특정 무덤만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가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법 위반이자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 행위'라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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