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전쟁에…얄궂은 ASML의 처지
WSJ "투자자들의 사랑 받지만 지정학적 격전지 한복판에 놓여"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전쟁의 영향으로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ASLM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지정학적 격전지의 한복판에 놓인 얄궂은 처지도 관심이다.
반도체 기판에 회로 패턴을 새겨넣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석판인쇄) 장비를 만드는 회사로, 이 분야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ASML은 다음 주에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판매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ASML의 중국 판매 비중은 작년 1분기 8%에서 3분기 46%로 껑충 뛰었다.
이는 서방 국가들의 수요 감소 영향이 크지만, 다른 중요한 요인은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다.
미국은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수입하는 걸 금지했고, 나아가 이보다 하위 성능의 일부 심자외선(DUV) 장비도 막는다.
중국 반도체 회사들은 이달 DUV 장비 금수 조치가 시행되기 전 서둘러 구매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금수 조치와 관계없이 ASML의 올해 대 중국 판매는 탄탄할 것으로 보인다.
ASLM 측은 중국 수출 가운데 10~15%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과거 모델을 활용해 첨단장비를 사용할 때와 비슷한 결과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가 많이 필요한 전기차와 풍력 발전용 터빈 등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대부분 반도체를 서방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부쩍 '반도체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방 기업들이 현지 업체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UBS가 중국 BYD의 전기차를 분해했더니 구동장치 반도체 중 36%가 중국산이었다.
전기차 업계 리더인 독일 인피니온과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미국 온세미의 타격이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이 ASML과 경쟁자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 왕원타오 상무부장이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지난달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리소그래피 장비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등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하지만 ASML 투자자들이 안심하기엔 이르다.
중국의 근본적인 수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고 장기적으로 중국이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쟁사들조차 극자외선 장비 복제품을 내놓지 못해 ASML은 독점적 회사가 됐고 주가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의 33배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장 지배력 때문에 ASML은 미·중 반도체 전쟁의 가운데 놓이게 됐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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