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현실화된 홍콩ELS 쓰나미, 책임규명·분쟁조정 속도내야
(서울=연합뉴스) 금융권이 판매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 상품에서 '원금 반토막' 사례 등 대규모 원금 손실이 현실화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 중 올들어 12일까지 만기가 도래한 원금 약 2천105억원 가운데 1천67억원의 손실(손실률 50.7%)이 확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홍콩H지수가 고점이던 지난 2021년 판매된 상품들의 만기가 올해 속속 돌아올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올 상반기 만기 도래를 앞둔 관련 상품 규모만 10조2천억원으로, H지수가 폭등하지 않는 한 손실 규모는 절반인 5조원대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걱정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데, 만기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기준을 밑돌면 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다. 홍콩H지수 기초 ELS에서 원금 손실이 잇따르는 이유는 상품이 판매된 2021년 이후 홍콩H지수가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홍콩H지수는 2021년 2월 12,000선을 넘어섰으나 그 해 말 8,000대까지 떨어진 뒤 현재 5,000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상품마다 다르긴 하지만 올해 상반기 홍콩H지수가 2021년 상반기의 65∼70% 수준은 돼야 대체로 원금손실을 피할 수 있는데 지금보다 큰 폭으로 반등하지 않는다면 원금손실이 불가피하다.
고위험 상품 투자 손실은 일차적으론 투자자의 자기책임이 크다. 그렇지만 판매사들이 투자자 보호책임을 다했는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작년부터 올해 12일까지 5대 은행에 접수된 홍콩 ELS 관련 전체 민원 건수만 1천410건에 이른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제대로 상품 설명을 듣지 못했다거나 퇴직 이후 쓰려했던 자금의 상당액을 잃었다는 투자 피해 하소연도 이어진다.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의 대부분이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됐고, 복잡한 상품 이해에 취약한 고령 투자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더욱 키운다.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제대로 고위험성을 알리고 충분한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이들 상품을 판매한 '불완전 판매'라면 책임이 작지 않다.
금감원이 지난 8일부터 주요 판매사 12곳을 상대로 순차 현장검사에 나선 만큼 최대한 신속히 조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은 견지해야겠지만 상품 판매사들의 위법·위규 행위가 드러난다면 책임을 확실히 물어야 한다. 분쟁 조정에 속도를 내고 손실부담 개선 등 제도적 정비도 검토해야 한다. 앞서 금감원 조사 결과 은행들이 핵심성과지표(KPI) 평가에서 고위험 상품 판매에 높은 배점 비중을 부여한 사례도 파악됐다. 고객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가 이뤄지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기 바란다. 물론 무엇보다 투자자 스스로 고위험 상품 투자에 대한 자기책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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