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라이칭더 둥쏸(凍蒜)!" 울려퍼진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

입력 2024-01-12 00:31
[르포] "라이칭더 둥쏸(凍蒜)!" 울려퍼진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

20만명 운집 속 차이 총통 등 총출동…라이칭더 "국가생존 보위·국민생명 수호"

지지자들, '젊은층 지지' 커원저 경계 분위기 뚜렷…"허우유이 싫은게 아니라 국민당 싫어"



(타이베이=연합뉴스) 김철문 통신원 = 대만 대선을 이틀 앞둔 11일 오후 7시30분(현지시간) 대만 북부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

한국으로 치면 서울 광화문 광장과 같은 카이다거란(凱達格蘭) 대로에 주최 측 추산 20만명에 달하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 후보의 지지자들이 운집했다.

한쪽 끝에서 다른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지지자들이 외치는 "라이칭더 둥쏸(凍蒜)! 라이칭더 둥쏸!" 함성이 온통 메아리가 돼 광장을 뒤덮으면서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둥쏸은 얼어붙은 마늘이라는 뜻이지만, 현지어로 당선(當選)과 발음이 비슷하다.

민진당은 '호국의 밤'을 주제로 '옳은 사람 선택하여 옳은 길을 가자'를 이날 행사의 대표 구호로 내세웠다.

오후 4시께엔 수십 명의 지지자들만 있던 행사장이 식전 행사가 열린 오후 6시40분께 이미 3만명으로 불어났다고 민진당 관계자는 기자에게 귀띔했다.



유세장에는 차이잉원 총통, 천젠런 행정원장, 쑤전창 전 행정원장, 천스중 전 위생부장(장관) 등 민진당 정부 고위 인사들도 총출동했다.

이들은 현 정부의 업적은 추켜세우면서 국민당의 '친중 성향'엔 날을 세웠다.

유세 분위기는 오후 9시가 다 돼 라이칭더 후보가 등장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라이 후보는 "국가 생존을 보위해 국민 생명을 수호하겠다"고 강조한 뒤 지난 8년간의 차이 총통 정부 기초하에서 '국가희망공정'을 추진해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겠다고도 했다.



라이 후보 지지의 장인 만큼, 기자가 만난 시민들은 라이 후보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타이베이시 인근 신베이시 린커우 지역에서 왔다는 두모(60)씨는 대만을 사랑하고 성장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당이 대만에 빈손으로 와서 대만의 모든 것이 국민당 소유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이 50세 때 1947년 반정부 시위를 국민당 지시로 군이 무력 진압해 수천 명이 사망한 '228사건'을 이해하고 나서 지지 정당을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러면서 허우유이 국민당 총통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허우 후보가 싫은 것이 아닌 국민당이 싫어서라고 했다.

두씨는 민진당 소속인 차이잉원 현 총통이 대만 경제를 성장시켰다면서 라이 후보 당선시 양안(중국과 대만) 간 전쟁 발생 우려에 대해서는 전쟁이 일어났다면 벌써 일어났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두씨의 50대 외사촌 동생도 '228사건' 당시 자신의 아버지가 19세였다면서, 국민당 정부군이 장화 지역에 살던 지식인을 모두 잡아가는 등 비극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성인(일본의 대만 식민 통치 종료 후 중국 등에서 대만에 이주한 사람)이 대만에 오면서 대만 정치에 암투극이 벌어졌다며 국민당을 겨냥했다.

다만 그는 4년 전 차이 총통이 대선에서 승리했을 당시 젊은 층이 모두 차이 총통을 지지했으나 이번에는 커원저 대만민중당(민진당)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층이 많아 라이 후보의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자의 인터뷰를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대학생 황모씨는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참정권을 행사한다면서 자신은 라이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그는 원래 커 후보를 지지했지만, 총통 자질이 점점 보이지 않아 라이 후보 지지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다만 자기 친구들은 여전히 커 후보를 지지한다고 전했다.

황씨는 또 허우 후보는 대만을 중국에 팔아버릴 것 같다면서 특히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언론 인터뷰에서 양안 관계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믿어야 한다는 '친(親)시진핑 발언'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허우 후보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장에 다닌다는 20대 여성 류모씨 역시 허우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너무 적극적이어서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커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층이 너무 많아 라이 후보 당선 가능성이 80% 정도 될 걸로 본다면서, 대만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공유하지만 실제 현실을 느끼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세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기자에게 자신을 라이 후보 지지자라고 소개한 한 60대 남성은 친구 3명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대만 민주 파이팅!", "대만 자유 파이팅!"을 외친 이 남성은 총통을 선택할 때 자신은 당이 아닌 사람을 본다면서 라이 후보가 대만에 대한 국가 의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만이 홍콩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유세장 근처에서 오순도순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60대∼70대 여성 3명에게도 라이 후보 지지 이유 등을 물었다.

두 명은 자매고 한 명은 오늘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이 여성이라고 했다.

신베이시 잉거 지역에서 산다는 좡모씨는 라이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200명을 설득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친중 행보를 하지 않고 대만 주권을 지켜주는 라이 후보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린모씨 자매는 민진당의 차이 총통으로 인해 대만의 국제적 지위가 올라갔다고 강조했다.

린씨 여동생은 현재 시진핑 국가주석 시절이 아닌 과거 후진타오 시절 중국이라면 중국과의 교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황제'라고 불리면서 대만을 향해 강력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시 주석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라이 후보는 본인이 모든 것을 결정할 능력이 있지만, 허우 후보는 배후에서 주리룬 국민당 주석과 마 전 총통이 그를 조정한다고 주장했다.

커 후보의 경우엔 조석으로 말이 바뀐다면서 그의 인기는 인터넷 때문이라고 깎아내렸다.



'커 후보를 찍으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든 30대 여성 허모씨도 이번에 처음 투표하는 젊은 층이 커 후보의 영향으로 라이 후보를 찍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등을 많이 보는 젊은 층이 커 후보를 정말 많이 지지해 총통 선거를 점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대부분의 국내외 언론이 이번 대선이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간 박빙 승부라고 보고 있지만, 이날 유세장에서 만난 라이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허우유이' 보다는 '커원저'라는 이름이 많이 나온 것은 의외였다.

라이, 허우 후보에 대한 '전통적 지지'와는 별개로, 대만 젊은 층에서 확실한 지지를 받는 커원저 후보의 정치적 존재감이 이번 선거를 통해 매우 높아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jinbi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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