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승리" 전쟁 장밋빛 전망에 국영 TV뉴스 끄는 우크라인들
전쟁 초기 사기 진작 역할 했지만, 장기전 속 시청률 급감…"신물 나"
"러시아식 국가 선전 안돼" 경계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장기화하는 와중에 국영 TV 뉴스가 지나친 장밋빛 전망을 이어가자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텔레마라톤 유나이티드 뉴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022년 2월 시작된 텔레톤(장시간에 걸친 텔레비전 방송·텔레비전과 마라톤의 합성어)으로, 정보전 측면에서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단이 됐다.
텔레마라톤에는 전쟁 이전 기준 우크라이나 전체 시청자의 60%를 차지한 방송사 6곳이 참여했다. 참여한 주요 방송사인 '스타라이트 미디어'의 올렉산드르 보구츠키 대표에 따르면 텔레마라톤 자금의 40%는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지원한다.
국민들은 이 방송에서 하루 종일 우크라이나 탱크가 러시아 진지를 폭파하고 의료진이 전선 가까이에서 수술하며 정치 지도자들이 해외에 지원을 호소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텔레마라톤 유나이티드 뉴스에 출연하는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이 방송이 러시아의 허위 정보에 대응하고 사기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 방송을 "무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대다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역시 전쟁 초기에는 텔레마라톤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도시와 마을을 점령하자 텔레마라톤은 시청자들에게 전투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피난처의 위치와 대피 시기 등을 알렸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의 감동적인 메시지를 수백만 가구에 방송하면서 중요한 시기에 국민의 사기를 높였다.
우크라이나 미디어 감시 단체 '디텍터 미디어'의 스비틀라나 오스타파 부국장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으로 텔레마라톤의 시청률은 40%에 달했다.
이후 수개월에 걸쳐 텔레마라톤은 24시간 내내 순조롭게 돌아가는 뉴스 채널로 자리 잡았고, 각 시간대를 최전선 관련 보도, 지휘관 인터뷰, 당국자와의 토론으로 채웠다.
그러나 이때부터 시청률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2022년 말에는 뉴스 프로그램 시청률이 14%까지 하락했다. 현재는 시청률이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쟁이 2년 가까이 이어지며 장기화하자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텔레마라톤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 방송이 정부의 대변자에 불과하다고 조롱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 뉴스가 전쟁에 대해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을 할 때가 많아서 전선에서의 우려스러운 전개 상황과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약화를 숨긴다고 지적한다. 이는 결국 국민들이 장기전에 대비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키이우 국제 사회학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텔레마라톤을 신뢰한다고 답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비율은 2022년 5월 69%였으나 지난달 43%로 급락했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5분의 2가 텔레마라톤 방송을 종료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NYT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전장에서 승리하기 어려워지자 정부에 대한 대중의 환멸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한다.
우크라이나의 미디어 모니터링 단체 '매스 인포메이션'의 옥사나 로마니우크 대표는 "모든 사람이 '우리가 이기고 있고 모두가 우리를 좋아하며 우리에게 돈을 준다'라는 그림에 신물이 났다"며 "이건 국가 프로파간다(propaganda)"라고 꼬집었다.
'디텍터 미디어'의 이호르 쿨리아스는 지난해 텔레마라톤 방송 출연자들이 "우크라이나군의 효율성과 기량"을 강조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러시아군은 "패닉 상태에 빠져 상당한 손실을 보고 대규모 항복한 것"으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묘사가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텔레마라톤의 편집에 얼마나 관여하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라고 NYT는 전했다.
텔레마라톤이 최근 젤렌스키의 홍보 활동의 장으로 변질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쿨리아스의 집계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소속 정당인 '국민의 종(영어명 Servant of the People)' 소속 당원이 텔레마라톤 정치 게스트의 68% 이상을 차지했으며 이 비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매스 인포메이션'의 로마니우크 대표는 텔레마라톤이 러시아의 프로파간다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우리는 전쟁 중에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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