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도 허물지 못한 동심…일상 꿈꾸는 가자 어린이들
난민촌 아이들, 폐허 속에서 미끄럼타거나 축구·구슬치기
"우리도 세상 모든 아이처럼 배울 권리 있어"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겨울철인데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열 살쯤 된 소녀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앙증맞은 다리를 허공에 차댄다.
토끼 인형 탈을 쓴 어른이 소녀 앞에서 박수 장단을 맞추고 사회자는 소녀에게 줄 장난감 선물 상자를 두드리며 연신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예닐곱살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도 리듬을 따라 뱅글뱅글 돌며 딴에는 열심히 춤을 춘다. 가만히 보니 왼쪽 팔의 절반이 없다. 아이는 선물로 받은 장난감 상자를 소중히 안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이 영상은 성탄절인 지난해 12월 25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있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학교 앞마당에서 촬영됐다.
팔레스타인에서 소셜네트워크(SNS)로 널리 공유된 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행사 기획자는 "우리는 오늘 천 명의 아이에게 선물을 나눠줘 기쁘게 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리베라시옹은 "석 달 동안 시련을 겪는 가자지구 어린이들에게 참혹한 전쟁 속에서 드물게 찾아온 은혜와 기쁨의 순간"이라며 "가자지구의 어린이도 죽거나 울거나 공포에 떨거나 굶주리지 않을 땐 세상의 다른 모든 아이처럼 놀고, 웃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집과 마을이 폐허가 돼 난민촌의 비좁은 수용소에서 지내면서도 아이들은 제각각 놀거리를 찾아 나선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움푹 패 비탈이 진 곳에서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고 잿더미가 된 동네의 모래 위에선 소년들이 축구를 한다. 공간이 없으면 구슬치기라도 한다.
가자지구 내 활동가들이 촬영한 동영상에서 아이들은 땔감 찾는 걸 놀이처럼 즐기거나 할머니를 도와 밀가루 반죽을 펴고 배급소에서 물병을 받아 난민촌의 가족 텐트에 옮기며 미소 짓기도 한다.
가자지구를 억누르는 폭격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동심은 순간순간 살아나 짧은 빛을 낸다.
이곳에서 자원봉사 하며 아이들과 대화하고 함께 놀아주는 무함마드 아보르젤라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보낸 동영상에서 "우리는 단 몇시간 만이라도 아이들에게 동심을 찾아주려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이자 영어 교사인 타렉은 석 달 간 학교에 가지 못한 난민 아이를 모아 텐트 아래에서 수업하고 있다.
그의 열두살 짜리 학생은 "우리도 세상의 모든 아이처럼 배울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아이는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집을 그린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우리도 여유가 된다면 삶을 사랑합니다"라는 팔레스타인 유명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를 읊조리며 포성이 멈출 그날을 상상한다.
s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