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위기에 134조 PF '빚 폭탄' 흔들…정부 역량 시험대(종합)
'풍선 바람 빼기' 본격화에 태영건설 구조조정 첫 타석 올라
정부, 시장 불안 확산 차단에 총력…PF사업장 '옥석 가리기' 본격화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한지훈 오지은 기자 = 태영건설[009410]이 28일 워크아웃을 전격 신청함에 따라 금융시장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시장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시장 안정화 및 협력업체 지원 대책, 분양계약자 보호 조치 등을 즉각 발표했다.
정부 대책들이 태영건설에서 촉발된 불안이 전체 건설·금융권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PF 대출잔액 134조…저금리에 몸집 급격히 부풀려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PF 부실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는 올해 내내 시장 최대 리스크로 손꼽혀왔다. PF 시장이 글로벌 저금리와 부동산 호황기에 힘입어 단시간 내 너무 단기간 몸집을 부풀려왔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PF 대출잔액은 134조3천억원이다. 부동산 PF 규모는 2020년 말 92조5천억원이었으나 2021년 말 112조9천억원 등으로 매년 빠르게 늘었다.
문제는 고금리·고물가 기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연체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말 0.55% 수준이었던 연체율은 9월 말 기준 2.42%로 올라간 상태다. 연체 잔액 기준으로는 3조원대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PF 대주단 협약'을 가동해 PF 부실에 대한 만기 연장 등을 지원해 왔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사업자들이 버틸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벌준다는 취지였지만,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한계에 맞닥뜨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정부가 이달 부실 사업장이나 한계기업에 대한 '자기 책임 원칙'을 공식화했고, 이러한 흐름에서 PF 관련 우발채무가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를 받아온 태영건설이 구조조정 첫 타석에 들어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 금융권 익스포저 4.58조…정부 "건전성 미치는 영향 제한적"
태영건설 관련 대출 채권을 보유 중인 금융회사들은 사태 파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태영건설의 높은 부채 비율을 고려할 때 워크아웃 절차 진행 중 일부 채권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금융권의 태영건설 관련 익스포저는 4조5천800억원이다. 태영건설 직접 여신이 5천400억원, 태영건설 자체 시행 중인 PF 사업장과 관련된 익스포저는 4조300억원으로 집계됐다.
2금융권도 다수 포함됐다는 게 특징이다.
업권별로 여전업계 5천억원, 새마을금고 4천700억원, 상호금융 1천800억원, 저축은행 700억원 등이다.
다만, 대부분 금융회사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등을 내세워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따른 직접 타격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산업은행 다음으로 대출 채권 규모가 큰 국민은행은 "HUG 보증서를 100% 담보로 임대주택 개발사업을 하는 태영건설 계열사에 지급된 PF 대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완공됐고, 분양 계약률도 95% 이상"이라며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이 사업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보험사 중 가장 큰 규모 채권을 보유한 한화생명보험도 "태영건설이 추진 중인 전주에코시티 프로젝트에 실행한 대출로 HUG 보증서를 100% 담보로 하는 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주에코시티는 준공 이후 정상 임대 운영 중으로 임대율 100%"라며 "건설사 디폴트 시 HUG가 100% 보증하므로 당사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도 금융권 익스포저 규모가 금융회사 총자산의 0.09% 수준이라며 "직접적인 영향은 매우 제한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금융기관이 PF 사업장별 사업성을 감안해 보다 충분한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 정부 안정 대책 발표…"불안 전이 충분히 차단 가능"
정부도 태영건설 위기로 그간 누적돼온 PF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시장 불안이 큰 상황을 감안해 다각도의 대책을 즉각 발표했다.
우선 워크아웃 신청으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건설사 발행 회사채와 기업어음(CP), 건설사 보증 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차환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한다.
저신용 기업들의 시장성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P-CBO) 프로그램 규모도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당장 태영건설에 받을 자금이 있는 중소형 협력업체들에 대한 지원책도 가동했다.
거래 은행별로 만기 연장이나 자금 지원 조치 등으로 도미노 부실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다.
분양계약자 역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 보증을 통해 입주까지 차질이 없도록 지원하고 사업 진행이 어려워질 경우 기존에 납부한 대금에 대한 환급 절차를 진행한다.
권대영 금융위 상임위원은 브리핑에서 "대한민국 경제·금융 시스템이 레고랜드 위기도 극복했는데 이 정도는 자신감을 가지고 상식에 기초해 조율하면 시장의 불안이나 건설업권으로의 전이 등은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며 "그 정도의 체력과 수단과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 PF 사업장 '질서있는 연착륙' 지속…건설업 종합 대책도 예정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금융당국의 전국 PF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그간 만기 연장 등을 통해 부실을 이연시키는 데 집중해 왔으나 최근 '자기 책임 원칙'을 강조하며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공매로 자산 가격이 재조정돼야 신규 투자 자금 유입될 수 있어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시장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다만 한꺼번에 경·공매가 쏟아질 경우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 될 우려가 있다. 만기 연장을 통해 버텨온 30조원 규모의 브릿지론 중 50%가량이 최종 손실 처리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질서있는 연착륙'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실한 PF 사업장이나 건설회사들은 내년 상반기부터 차례대로 정리 절차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권대영 위원은 "정부 입장이 특별하게 바뀐 것은 없지만 시장에서 정리나 재구조화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다만 경착륙(하드랜딩)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에 대한 관계부처 종합 지원 대책도 추가로 수립해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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