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부인 공개행보 과시…"히잡시위는 패션·소비문화 숭배"

입력 2023-12-13 16:40
수정 2023-12-13 16:41
이란 영부인 공개행보 과시…"히잡시위는 패션·소비문화 숭배"

서방언론 인터뷰…"도덕적 부패가 핵폭탄보다 빨리 인류 멸망시켜"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 최근 왕성한 공개 행보로 자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자밀레 알라몰호다(58) 이란 영부인이 다시 한번 서방 언론과 인터뷰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알라몰호다 여사는 논쟁적 행보와는 반대로 전통적 윤리를 설파하며 지난해 벌어진 히잡 시위는 그릇된 서방 문화의 영향 탓이라고 깎아내렸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알라몰호다 여사는 최근 왕성한 대외 활동에 대해 "나는 교사이고 철학 이론에 집중하고 있다"며 "오래전부터 이 일을 했는데, 이제 우연히 플랫폼을 찾아서 내 활동이 가시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란 국립 샤히드 베헤스티 대학의 교육철학 교수이자 이 학교 과학기술연구소 소장인 알라몰호다 여사는 40여 년 전 라이시 대통령과 결혼해 두 딸을 키우며 박사 과정을 거치고 8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남성 중심적인 이란의 과거 영부인들이 대외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정치와 거리를 둔 것과 달리 알라몰호다 여사는 고등 교육과 직업적 배경을 갖추고 왕성한 행보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유엔 총회에 참석한 라이시 대통령과 함께 미국 뉴욕을 방문해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여성의 역할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유럽 정상 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가자지구에서의 전쟁 중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란에서 알라몰호다 여사의 대외 행보는 논란과 감시의 대상이 됐지만 여사는 "모든 부부처럼 남편과 상의 없이 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입장이다.



알라몰호다 여사는 지난해 히잡 시위 이후에도 히잡 의무화 법을 유지해야 하는지 질문에 대해 "문제는 이슬람 복장 규정이 아니라 패션 및 소비주의에 대한 숭배"라고 답했다.

지난해 9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장 단속 순찰대에 체포된 뒤 의문사했고,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9개월 넘게 이어진 시위에서 최소 500명이 숨지고 2만여 명이 체포됐다.

알라몰호다 여사는 시위가 이란의 적대국에 의해 주도됐다면서 "히잡이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무기로 쓰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히잡의 철학은 여성이 사회를 우월성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무대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는 여성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유혹하는 것이다. 이슬람 공화국은 유혹으로 이끄는 것을 제한하고 사회의 성장을 돕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FT는 알라몰호다 여사의 저서 대부분이 여성의 처세술이나 이슬람 교육 이론 등에 대한 것으로, 여성성과 종교적 가르침을 교육에 적용하는 방법을 담고 있었다고 전했다.

알라몰호다 여사는 서구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향해 "독립의 대가는 여성성을 피상적 매력으로 격하하는 것"이라며 "도덕적 부패와 방탕은 핵폭탄보다도 빨리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2015년 미국 등 6개국과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맺고 핵 프로그램 동결·축소에 합의했으나, 2018년 미국이 JCPOA에서 탈퇴하자 핵 개발에 다시금 박차를 가하고 있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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