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결산] 화제의 인물 : 국제
(서울=연합뉴스) 두 개의 전쟁이 지구촌을 흔든 한해였다. 새로운 인물이 끊임없이 부상했고 부침도 심했다.
우크라이나와 2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심복'으로,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로 비극적 최후를 맞으며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인생을 마감했다.
하마스의 기습에 '피의 보복'을 선언한 이스라엘에서는 극우파와 손잡고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 절멸을 기치로 전시내각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포스트 전쟁' 국면에서 그를 기다리는 안팎의 정치적 현실은 녹록지 않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며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르헨티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경제학자 출신 아웃사이더 하비에르 밀레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냉전 시기 데탕트(긴장완화)를 이끌었던 미국 외교계 거목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라이벌로 통했던 리커창 전 총리, 생전 스캔들 제조기로 불렸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는 유명을 달리하며 역사의 또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챗GPT 출시로 인공지능(AI) 열풍을 일으키며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해임 소동 끝에 복귀, AI 상업화 경쟁을 예고했다.
문화계에선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 양쯔충(양자경·미셸 여)은 아시아계 최초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역경 속에서도 연구를 놓지 않았던 '불굴의 이단아' 커털린 커리코는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노벨상의 영예를 안으며 인류를 코로나의 늪에서 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핵융합 같은 에너지"…'스위프트노믹스', 사회·경제 현상된 테일러 스위프트
인기 절정의 미국 팝스타로 2023년 국내 및 월드 투어 콘서트로 수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일으키며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그가 순회공연을 하는 곳마다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사회·경제적 현상'에 가까운 인기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스위프트의 팬덤을 뜻하는 '스위프티'(Swiftie)는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올랐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그는 10월 세계 부호 순위를 산정하는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공식적으로 포함됐다.
순자산은 11억 달러로 1조4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음악과 공연만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미국 CNN 방송은 평가했다. 순회공연인 에라스 투어 매출은 10억5천만 달러(약 1조3천700억 원)로 사상 최초로 10억 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스위프트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2023년 '올해의 인물'에도 올랐다. "핵융합과 같은 에너지를 분출했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명문 하버드대를 비롯, 미국 대학들이 그의 음악 세계 등을 다루는 강의를 잇따라 개설하면서 그의 파워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 돌연 해임→화려한 복귀 '반전'…'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
미국 인공지능 개발사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로, 대화형 AI 서비스 '챗GPT'의 성공을 이끌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하고 2005년 위치기반 소셜미디어 스타트업을 차린 그는 2011년 유명 스타트업 창업육성업체 와이콤비네이터에 합류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회장직에까지 올랐다.
2015년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링크드인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먼 등과 '인류를 이롭게 하는 AI' 개발을 목표로 오픈AI를 설립했다.
2018년 머스크의 이탈 등 부침 속에서도 오픈AI는 올트먼의 지휘 아래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10억달러 투자를 유치했고, 지난해 11월 출시한 챗GPT로 전 세계에 AI 열풍을 일으켰다.
올트먼은 더 적극적인 AI 개발과 상용화를 꾀하다 AI의 위험을 간과한다고 본 이사회와의 알력으로 11월18일 전격 해임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MS를 비롯한 투자자들과 임직원 대다수가 그의 편에 서자 이사회는 닷새 만에 백기를 들었고, 올트먼은 화려하게 컴백했다.
AI의 위험성을 둘러싼 철학적 갈등이 표면화한 이 사건이 올트먼의 복귀로 마무리되면서 AI 상업화 경쟁이 가속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 냉전 국제질서 재편 이끈 美 외교 거목 헨리 키신저
독일 태생의 미국 외교관으로, 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시대 세계 질서 재편을 주도한 전략가. 11월 29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중반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 등을 지냈으며 퇴임 후에도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1971년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이듬해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다.
옛 소련과 군비축소 등 데탕트를 이끌었고 1973년 4차 중동전쟁 때는 '셔틀 외교'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종전에 기여했다. 베트남전 종식 노력으로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국익만 존재할 뿐"이라는 생전 유명한 어록처럼 국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도 무시하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면모로 많은 비판을 받는 등 명암도 엇갈렸다.
베트남전 때 북베트남에 타격을 주기 위해 중립국이었던 캄보디아를 비밀리에 폭격해 최소한 5만명의 민간인 사망을 초래했고, 칠레 아옌데의 정부를 무너뜨린 유혈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개최를 제안하는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러 발언을 하며 관심을 보였다.
◇ '푸틴의 요리사'에서 반역자로…비극적 최후 맞은 예브게니 프리고진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잡범 출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가 그 등에 칼을 꽂으며 루비콘강을 건넜다.
프리고진은 1980년대 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외식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면서 푸틴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다. 크렘린궁의 연회 케이터링을 맡아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2014년 용병업체 바그너그룹을 창설하면서 '충견'으로 거듭났다.
바그너그룹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시리아·리비아·수단 등의 분쟁에 개입하며 세력을 키웠고, 고문, 학살 등 잔학행위로도 악명을 떨쳤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프리고진은 교도소 출신 병력을 내세워 최격전지 바흐무트 점령 등 전과를 올렸으나, 군 수뇌부를 비협조적이고 무능하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등 극심한 갈등 끝에 6월 23일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러시아 본토로 진격하다 처벌 면제와 벨라루스 망명을 조건으로 1일 천하로 회군했다. 그 직후 푸틴 대통령과 면담하고 러시아와 벨라루스, 아프리카 등을 자유롭게 오가며 신변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반란 두 달 만인 8월23일 전용기 추락으로 심복들과 함께 사망, 앞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푸틴 정적들의 전철을 밟았다.
◇ 극우 괴짜 경제학자에서 대통령으로…'아르헨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11월19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 투표에서 좌파 집권당 후보를 역전승으로 누르고 권좌에 오르며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12월 10일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취임, 대격변을 예고했다.
극우성향의 '괴짜' 경제학자 출신으로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던 그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등에 업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140%대의 연평균 인플레이션과 40%대 빈곤율로 신음하는 아르헨티나의 페소화를 달러로 대체하는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장기 매매 허용 등 다소 과격한 공약을 내세워 "새 판을 짜자"라는 전략으로 지지층을 결집했다.
선거기간 전기톱을 들고 유세를 펼치는 등 파격적 정책과 기행으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당선 일성으로 "아르헨티나의 재건이 시작된다"고 선언한 밀레이 대통령은 12월 12일 급격한 페소화 평가절하와 보조금 삭감 등을 골자로 한 10대 경제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는 극약처방을 했다. 막후실세로 꼽히는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를 규정까지 바꿔 비서실장에 앉혔다.
◇ 쓸쓸하게 생 마감한 '시진핑의 라이벌' 리커창
시진핑 국가주석의 라이벌로 불렸던 중국 전 총리.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7개월여 만인 지난 10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2013년부터 올해 3월 퇴임하기 전까지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강력한 총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시 주석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그에게 실권이 허락되지 않으면서 '식물 총리'로 불릴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총리 재임 기간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는 등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시 주석에게 집중된 권력의 벽을 넘지 못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경제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전역에서는 애도 물결이 이어졌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 한 골목은 생화가 산을 이루기도 했다.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長江黃河不會倒流)라거나'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 天在看) 등 권력을 견제하는 의미를 담은 생전 발언이 화제가 됐다.
◇ '가상화폐 천재'서 '수십조 사기극' 주인공으로 추락, 권도형
전세계 가상화폐 가치의 폭락 도미노를 불러온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
한때 '한국판 일론 머스크'로 불리며 가상화폐 업계의 총아로 떠올랐으나,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홈스 전 테라노스 CEO와 비교되는 처지가 됐다.
전 세계 투자자의 피해 규모는 50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4월 싱가포르로 출국·잠적했으며, 도피행각 11개월 만인 올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출국하려다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 현지에 구금됐다.
한미 양국 검찰이 각각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현지 소식통을 인용, 권씨가 미국으로 송환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권씨가 실제로 미국에 인도된다면 종신형인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뉴욕 검찰은 지난 2월 그를 증권 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몬테네그로 법원은 한미 요청에 따라 도주 우려 등을 이유로 권씨의 구금 기간을 내년 2월15일까지 2개월 연장했다.
◇ 아시아계 최초 오스카 거머쥔 여우주연상 양자경
3월12일 제95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시아계 배우 최초 오스카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이 다중 우주를 넘나들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독특한 코믹 판타지 영화다. 양쯔충은 극중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이민 1세대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벌린을 연기했다.
말레이시아의 부유한 화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발레를 배웠고 1983년 미스 말레이시아로 뽑힌 후 배우가 됐다.
홍콩으로 넘어가 '예스마담' 시리즈, '폴리스 스토리 3', '프로젝트S' 등을 통해 1980∼90년대 액션 스타로 성공했다.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해 '007 네버다이', '와호장룡', '게이샤의 추억', '쿵푸팬더2' 등을 통해 자신의 무대를 확장했다.
환갑이 넘어 당당히 할리우드 중심에 선 그는 "여성 여러분, 여러분들은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시기를 바란다"는 수상소감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하마스 소탕' 진두지휘 베냐민 네타냐후, 정치생명은 위태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로 이스라엘 우파의 상징. 2022년 12월 극우파를 끌어들인 초강경 우파 연립 정권으로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1995∼1999년 첫 임기에 이어 2009년 3월 이후 4차례 연속 12년 2개월간 집권했다가 2021년 6월 실권한 지 1년 반 만에 총리직을 되찾았다.
뇌물 수수, 배임 등의 부패 혐의로 실각했던 그는 재집권 후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입법을 강행, 격렬한 시위와 야권의 반발,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이후 '피의 보복'을 선언, 전시 내각을 이끌고는 있지만 하마스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으로 궁지에 몰렸다.
특히 안보 실패의 책임을 군과 정보기관에 돌리는 발언은 공분을 샀고,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국제사회에서도 비난이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우방인 미국 정가에서도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생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하는 등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그의 정치적 입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종신 집권 길 연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5월 28일 대선 승리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2003년 첫 집권 이후 2033년까지 최장 30년에 달하는 사실상의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올해 초 21세기 최악의 재난의 하나로 기록된 강진으로 초기 대응 실패 논란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비판에 직면, 대선 목전에서 집권 20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결선 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자신이 '21세기 술탄'임을 증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성공은 중동과 유럽, 서방과 반서방의 국제질서에도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혔다.
그는 재집권 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각종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 부각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흑해 곡물 협정이 이어지도록 푸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했다.
튀르키예는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을 비판하면서 이 지역 분쟁 종식 방안으로 주변국이 참여하는 '다자 평화보증' 구상을 제안했다.
◇ 꺾이지 않는 집념 '백신의 어머니' 커털린 커리코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선구자. 2023년 10월 2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커리코는 1955년 헝가리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푸줏간 집의 딸로 태어났다.
mRNA에 매료돼 연구에 매달렸던 그는 헝가리에서 연구실 예산이 끊기자 1986년 미국행을 택했다. 차를 팔아 마련한 돈 900파운드(약 148만원)를 두살배기 딸의 곰 인형 배에 몰래 넣어왔다.
그는 미 템플대를 거쳐 펜실베이니아 의대로 자리를 옮겼지만 입지는 줄곧 위태로웠다. 미국 내 mRNA 연구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연구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시절 암 진단까지 받았다.
커리코는 승진 대신 연구직 강등과 연봉 삭감을 택하면서도 mRNA 연구를 놓지 않았다.
저명한 연구자 드루 와이스먼과의 우연한 만남은 그에게 전환점이 됐다. 와이스먼은 커리코의 연구비 문제를 해결해줬고, 커리코는 20여년간의 연구 끝에 mRNA 백신의 핵심 기술 개발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와이스먼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 스캔들과 함께 잠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스캔들 제조기'로 불렸던 전후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6월 12일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1960년대 건설업으로 부를 축적한 뒤 1980년 민간 방송 채널들을 인수하며 언론 재벌이 됐다. 1986년엔 명문 축구팀 AC밀란도 인수했다.
그는 자수성가 기업가 이미지, AC밀란의 인기, 언론 영향력 등을 바탕으로 승리해, 정계 진출 몇개월 만에 1994년 '벼락 총리'가 됐다. 이후 201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9년간 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집권 기간 성 추문과 비리, 마피아 커넥션 등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2011년 미성년자 성 추문 의혹과 이탈리아 재정 위기로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고, 2013년에는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했다.
2022년 9월 조기 총선에서 10년 만에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 일선에 복귀했으나,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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