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또 '요소 사태' 걱정, 갑자기 벌어진 일 맞나
6월부터 가격 상승·9월 일부 기업 수출 중단에도 對中 의존도 고공행진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지난달 30일 현지 기업이 한국의 한 기업에 수출하려던 산업용 요소 수출을 돌연 보류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요소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이달 3일이다.
중국 비료 업계에서 내년 1분기까지 수출 중단이 이어지고 아예 수출 물량을 70%가량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두 해 전에 겪었던 '요소 대란'이 다시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내 재고와 중국 외 국가 계약 물량으로 3개월분 이상을 확보한 상태라지만, 대(對)중국 산업용 요소 의존도가 2021년 71% 수준보다 더 높아진 91% 수준이 됐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해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외교가에선 중국이 협상을 통해 2년 전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수출용 요소 물량을 풀어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이런 거래가 이뤄진다고 해도, 그만큼 우리의 외교적 자산이 비용으로 청구되는 일을 피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늦은 일이지만 이번 우려가 어디에서 시작된 일인지 되짚어보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고 본다.
◇ 이미 울렸던 '경보음'…中 '식량 안보' 강조 속 요소시장 6월부터 출렁
지난 3일부터 쏟아진 한국 매체 기사들에는 중국이 수출을 '돌연' 중단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올해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자면 수출 중단이 꼭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최대의 요소 생산·수출업체 중 하나인 중눙그룹(CNAMPGC)은 9월 2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을 통해 "국내 요소 비수기·성수기 전환과 동계 비축의 중요한 시기를 맞아, 최근 국내 요소 가격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출량을 줄이고, 시장 판매에 적극 나서 주요 농자재·비료의 국내 공급을 뒷받침하며 가격 안정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 발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한국 정부는 수출 중단이 중국의 비료용 요소 제조기업 한 곳에 불과하다며 "2021년 요소수 대란 재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보면 중국 내 요소 시장은 이보다 앞선 올해 중반부터 출렁였다.
정저우 상품거래소 요소 선물 가격은 6월 중순 톤(t)당 1천600위안(약 30만원) 수준이었다가 7월 말까지 50%가량 급등했고, 최근에는 2천500위안(약 46만원)대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국내 재고가 감소하고 수출이 늘어난 것이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진단해왔다.
중국 해관총서 통계를 보면 중국의 올해 상반기 요소 수출 총량은 101만t, 6월 한 달 수출량은 22만t이었다. 이후 수출량은 7월 32만t, 8월 31만t이 됐다가 9월 들어 119만t으로 뛰었고, 10월엔 56만t을 기록했다.
요소 수출 통제의 중요한 배경이 된 중국의 '식량 안보' 강조도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요소는 경유 자동차 등에 필요한 요소수 등 산업 용도도 있지만 질소 비료의 원료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경작 가능한 토지가 전 국토의 7%에 불과하고 곡물 품질이 높지 않다는 점을 전략적인 약점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세계적인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화 등 해외 조달 리스크가 분명해졌고, 특히 올해 중반 들어 태풍과 우박이 동북 지역 등 주요 농산물 생산지를 덮치는 등 자연재해 우려도 상존하는 상황이다.
이에 올해 6월 경작지 보호와 곡물 생산, 식량 비축·유통·가공·응급상황 대응, 식량 관리·감독 등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은 식량안보보장법 입법 절차가 본격화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식량 안보에 중점을 두라는 입장을 낸 것도 여러 차례고, 9월엔 중앙정부가 농지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지방정부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한 일도 있었다.
중국의 이 같은 식량 안보 개념에는 경작철을 대비한 비료 비축도 한 축을 차지한다. 그런데 요소의 원료인 석탄 부족 상황이 2021년에 이어 올해 또 벌어졌고, 다른 원료인 천연가스까지 불안정해진 상황이 됐다. 국가 시책인 국내 수요 충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요소 공장들이 잇따라 시설 점검에 들어가는 시즌이 되자 중국 당국은 생산량 확보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 외교부 직속 싱크탱크인 국제문제연구원의 샹하오위 아태연구소 특별초빙연구원은 지난 6일 관영매체 기고문에서 "요소 생산은 원자재 공급과 가격 변동 등 요인의 영향을 받기 쉽다"며 "중국산 요소는 당연히 국내 수요를 우선 충족해야 하고, 부득이한 수출 통제 조치는 주로 국내 시장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 역시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중국 요소 업체 쓰촨메이펑화공은 최근 "왜 한국에 비싼 값에 제품을 수출하지 않는가"라는 투자자의 질문이 있었다면서 "국내 비료 수요 보장을 우선시하고 있어 현재 우리 제품의 수출을 잠정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관련 정책 변화를 긴밀히 주시하고 시장 마케팅 통로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설명을 내놨다.
◇ 中 수출 물량 줄었는데 對中의존도는 90% 넘어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올해 산업용 요소의 중국 의존도는 1월 95.9%로 시작해 상반기엔 2월 85.9%→3월 87.0%→4월 88.7%→5월 88.5% 등 대체로 80%대 후반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6월이 되면 의존도는 90.1%가 되고, 이후 7월 90.2%, 8월 90.7%로 차츰 높아지다 '경보음'이 울린 9월에는 92.0%, 10월에는 91.8%를 기록한다.
중국은 9월 119만t이던 요소 수출량을 10월 56만t으로 50% 넘게 줄였는데 한국의 중국산 산업용 요소 수입량은 9월 22만3천t에서 10월 26만7천t으로 오히려 늘었다.
10월만 놓고 보면 한국으로의 산업용 요소 수출량이 중국 전체 요소 수출 물량의 절반가량인 셈이다.
2021년 '요소 대란'을 거치며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지만, 농업용 요소 의존도만 2021년 60%대에서 올해 10∼20%대로 낮췄을 뿐 산업용 요소 의존도는 절대적인 비중으로까지 높아졌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물론 농업용 요소와 산업용 요소는 제조기법에 차이가 있고, 표면 처리를 하지 않은 상태로 수입하는 산업용 요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요소수로 만들기 까다로워지므로 국내에서 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조달하는 게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2021년 사태로 높아진 수입선 다변화 목소리가 실현되지 않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중국이 요소까지 '자원 무기화' 리스트에 포함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한국의 수입량과 중국 내 수급·가격 사정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의 이런 '중국 일변도' 수입 방식이 중국에 무기를 쥐여줬다고 하는 편이 보다 나은 설명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면서 세계적인 대중국 견제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기조와 중국이 올해 들어 미국 중심의 경제 제재에 대응해 갈륨과 게르마늄, 흑연 등 전략 자원의 수출 통제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산업용 요소 수입선 다변화는 리스크 경감 차원에서 진작 이뤄졌어야 할 일이었다는 지적은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중국 견제'의 당위성이나 효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 중국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면서도 주요 물자의 무역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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