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급가속, 브레이크 안듣는다면…"EPB 켜고 기어는 중립에"

입력 2023-12-08 18:00
수정 2023-12-08 19:27
아찔한 급가속, 브레이크 안듣는다면…"EPB 켜고 기어는 중립에"

한국교통안전공단, 전자식 주차브레이크 활용 '의도치 않은 가속' 대처 시연

15개사 364개 차종에 EPB 장착…제작사·소비자에 사용성 높일 방안 권고



(화성=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운전 중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는데도 차가 앞으로 튀어 나가는 상황은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하다.

흔히 발생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럴 때 간혹 브레이크 페달마저 듣지 않는 바람에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보도되곤 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8일 이런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 상황에서 브레이크 페달 외에 차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멈출 수 있는 비상 제동장치가 '전자식 주차브레이크'(EPB·Electronic Parking Brake)인 것으로 국내 판매 차량 주행·제동시험 결과 확인됐다고 밝혔다.

EPB는 과거의 기계식 주차브레이크(사이드 브레이크) 기능을 대체한 물리·전자식 버튼이다. 알파벳 'P'에 괄호가 붙은 '(P)' 표시의 버튼으로 운전대의 왼쪽이나 오른쪽 하단, 변속 레버 옆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버튼은 주로 2010년대 이후 출시된 차량에 적용됐다. 현재 국내 판매 차량 중에서는 현대차·기아, 벤츠, BMW를 비롯한 15개 제조사의 364개 차종에 장착돼 있으며, 이들 제조사의 전기차에는 모두 EPB가 달렸다. 공단은 EPB가 아닌 기계식 브레이크 차량의 안전 정차법도 추후 연구를 거쳐 소개할 계획이다.

의도치 않은 급가속 시 브레이크 페달이 듣지 않는다면 즉시 EPB를 계속 작동하면서 변속기어를 중립으로 두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공단은 강조했다. 기어를 조작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EPB만 작동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날 공단은 경기 화성시 공단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 주행시험장에서 시연을 통해 EPB를 통해 차량을 신속·안전하게 멈출 수 있는 대처 방안을 소개했다.

시연에는 현대차·기아, 제네시스, KGM(KG모빌리티), 벤츠, BMW, 볼보, 포르쉐 등 EPB를 장착한 국산·수입 브랜드 차량 15대가 사용됐다. 전기차뿐 아니라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모델 차량 모두를 대상으로 급가속과 제동 상황을 시연했다.

기자는 자동차안전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모는 현대차 아이오닉6에 탑승해 EPB로만 제동하는 상황을 체험했다. 시속 100㎞ 넘게 달리는 차량의 가속 페달을 계속 밟은 채 운전대 왼쪽의 EPB 버튼을 쭉 당겼다. '삐비비비빅' 경고음이 나면서 차량이 점점 느려지더니 약 4초 만에 완전히 정지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차가 멈추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기자가 직접 아이오닉6의 운전대를 잡고 시속 약 60㎞까지 속도를 냈다가 EPB 버튼을 작동했다. 이번에는 3초도 되지 않아 차바퀴가 더 굴러가지 않았다. 다만 차가 멈춘 뒤 문을 열어보니 고무가 타는 냄새가 심하게 났다. 브레이크 패드가 마모된 탓이었다.

우나은 선임연구원은 "EPB를 사용하면 브레이크 패드가 많이 닳기 때문에 한두 번 정도만 쓰면 교체해야 한다"며 "브레이크 페달이 전혀 작동하지 않을 때 긴급하게 쓰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급가속 시 강제로 시동을 끄는 것으로도 제동을 할 수 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시동 버튼을 제대로 누르기가 쉽지 않아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공단은 밝혔다. 주행 중에는 시동 버튼을 3∼5번 누르거나 최대 5초간 계속 눌러야 시동이 꺼지는데, 버튼을 실수로 한 번 더 누르면 시동이 다시 켜질 우려도 있다.



실제로 이날 시연에서 시동을 끄는 방법만으로는 EPB나 브레이크 페달을 작동하는 상황보다 제동거리가 길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시동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 참가자는 전했다.

공단은 이처럼 위급한 급가속 상황에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EPB의 사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자동차 제작사와 소비자 양측에 각각 권고했다고 밝혔다.

제작사에는 우선 사용자 매뉴얼에 포함된 EPB 작동법을 판매시 따로 안내하도록 권고했다. 운전자가 EPB를 쉽게 작동할 수 있도록 버튼 위치와 작동법을 설계할 것도 요청했다. 비상제동 상황에서는 차량의 동력을 자동으로 차단하고 비상 제동장치를 작동해 더 빠르게 멈출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개선도 권고했다.



자동차안전연구원 중대사고조사처 박기옥 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EPB의 위치까지 법규로 규정한 경우는 없지만, 제작사들이 좀 더 안전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소비자들을 상대로도 '의도치 않은 가속'이 발생할 여지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운전석 아래 매트는 물론 물병이나 물티슈, 신발 등 각종 이물질이 떨어져 페달에 끼지 않도록 하고, 음주·졸음운전이나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YNAPHOTO path='AKR20231208134300003_10_i.jpg' id='AKR20231208134300003_1001' title='포르쉐 카이엔 차량의 가속 페달에 페트병이 낀 모습' caption='[촬영 임성호]'/>

또 평소 주정차 시에도 EPB 작동을 생활화하고, 긴급제동을 한 뒤에는 서비스 센터에서 차량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문제는 없는지 점검받아야 한다.

공단 권용복 이사장은 "이번 시연을 통해 주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비상 상황으로부터 교통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 권고하는 사항을 숙지해주시기를 바란다"며 "안전 대응·조치 방안을 지속 연구하고 알려 교통사고 예방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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