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건우 "음악은 나눔…평화롭게 자유롭게 나누며 지내고파"
다가오는 윤정희 1주기엔 "알츠하이머 간병,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홍콩서 젊은 연주자들과 콘서트…"전쟁과 대립의 시대, 음악이 위로될 수 있어"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일생을 연주 여행을 하며 지냈지만, 여행다운 여행은 못해봤어요. 이제는 자유로운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또 나이도 있으니 남과 나누면서 평화롭게,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요. 행복은 혼자서도 추구할 수 있겠지만 남과 나누는 게 더 행복한 것 같아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7)는 지난 6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하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홍콩공연예술원에서 만난 그는 희수(喜壽)의 나이에도 세계 여기저기 연주를 다니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건강함을 과시했다.
그는 지난달 시작한 'HKGNA 뮤직 페스티벌 2023'의 7∼8일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홍콩을 찾았다. 홍콩 청소년을 위한 음악 치유 활동과 장애인 청소년 대상 음악 교육을 제공하는 자선 단체 HKGNA(홍콩차세대예술협회)가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로 10회를 맞이했다.
46년을 함께 한 아내인 배우 윤정희가 10여년 알츠하이머 투병 끝에 지난 1월 19일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은 그는 인터뷰에서 지나간 시간들과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여전히 세계 연주 여행을 하는데 건강과 체력은 어떻게 유지하나.
▲ 걷는 것을 좋아해서 산책을 자주 한다. 하루 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있으니 걸을 필요가 있다. 음식은 먹고 싶은 거 다 먹는다. 술은 많이 안 마신다. 목마를 때 맥주 한잔, 밖에서 식사할 때 와인 한두잔 하는 정도다.
코로나19 기간에도 잘 버텼다. 대만에 공연하러 갔다가 공항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이 나와 일주일간 현지 병원에서 보낸 것 빼고는 괜찮았다. 그때 병원 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고생했을 뿐(웃음) 증상도 심각하지 않았다. 조금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을 뿐이다.
-- 젊은 연주자들과의 무대를 위해 홍콩을 찾았다.
▲ 젊은이들과 작업하면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음악은 경험이다.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내가 그런 경험이 돼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함께 할 수 있다. 음악은 나눔이다. 그동안은 내 배움과 여러 일들로 바빴지만, 이제는 젊은이들과 좀 더 나누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겠다고 느낀다. 알다시피 내가 그간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았나.
(백건우와 그의 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는 지난 2년여간 윤정희의 성년후견인을 놓고 윤정희 동생과 법정 다툼을 벌였다. 윤정희 동생이 백건우 부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윤정희를 방치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 처가 식구들과 법정 다툼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듯하다.
▲ 재판을 네 번이나 했다. 상상도 못한 일이다. 집안싸움이 공개되는 것도 싫고 해서 꾹 참고 있었는데 TV 프로그램에서 다루면서 어쩔 수 없이 반박도 하게 된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 어느새 배우 윤정희씨 1주기가 다가온다. 눈감기 전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나.
▲ 46년 결혼 생활에서 13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 영화 '시'(2010)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치료가 시작된 지 몇 년 됐었다. 그러나 영화는 장면을 나눠서 찍는 작업이라 도전했다. 이창동 감독이 촬영하면서 병세를 알아차렸는데 외부로 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굉장히 신경을 써줬다. 참 고마운 분이고 그때부터 좋은 마음의 친구가 됐다.
'시'를 찍은 후에도 몇 년간 나와 같이 연주 여행을 다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환자를 데리고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나 말고는 곁에 두고 싶어하지 않아 해서 연주 여행에 함께 했는데 뒤로 갈수록 참 힘들었다. 알츠하이머 환자 간병이 어떠한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어느날 TV에서 알츠하이머 아내를 돌보는 한 남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편은 직업이 없어서 아내 돌보는 일만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연주를 하면서 아내를 돌봐야 했던 것 아닌가. 병세가 악화하면서는 내가 연습할 때도 불쑥불쑥 들어와 TV를 어떻게 켜냐, 세탁기를 어떻게 돌리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알츠하이머 환자 가족들은 처음에는 환자를 가족 안에서 돌보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게 불가능한 때가 온다. 의료시설에 의지해야 할 때가 오고, 그렇게 우리도 떨어져 이별을 준비하게 됐다.
--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배우 윤정희를 기렸고 따님이 연주하는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다.
▲ 진희가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는데 내가 설득해서 연주했다. 잘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진희가 엄마를 정성껏 돌보면서 병실에서 바이올린 연주도 자주 했다. 그렇게 열심히 돌본 것을 연주로 세상에 알리자고 내가 설득했다.
-- 여러 일을 겪어내셨다. 특별히 고마움을 느끼는 게 있다면.
▲ 돌이켜보면 연주자로서 몇십년을 살아갈 수 있어 운이 좋았다. 절망적이라고 느낄 때마다 정말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뻗어왔다. 그때 만약 그 도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순간들이 참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수호천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웃음)
-- 전쟁과 대립의 시대다.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 음악의 언어는 훌륭해서 제대로 전달만 잘하면 국경과 언어를 초월할 수 있다. 음악을 통해 사랑, 순수, 고통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음악은 소중하고 중요하다.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게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해야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음악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휴머니티가 없는 음악은 쇼일 뿐이다. 휴머니티가 있는 음악이라야 듣는 이가 감동하고 공감한다. 나는 일생 음악의 힘을 믿으면서 살았다.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도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인간을 위로하는 음악의 힘이고 고귀함이다. 내게 앞으로도 음악인으로서 숙제가 많다. 세상에 슬프고 아픈 일들이 많은데 음악을 통해 나누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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