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장한 IRA發 공급망 리스크…긴장하는 K-배터리업계

입력 2023-12-03 16:12
다시 등장한 IRA發 공급망 리스크…긴장하는 K-배터리업계

美 '우려기업' 세부규정 발표에 "당장 대응책 마땅찮아…민관 공동대응 필요"

핵심광물 공급망서 中 비중 여전히 압도적…탈중국화 노력 속도낼듯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이슬기 기자 =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외국 우려기업(FEOC) 관련 세부 규정안을 발표하자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 수급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국내 배터리업계는 이번 조치가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가 1일(현지시간) 발표한 FEOC 세부 규정안은 사실상 중국에 있는 모든 기업을 IRA의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고, 중국 기업이 자국 밖에서 외국 기업과 설립한 합작회사의 경우 중국 정부 관련 지분이 25% 이상이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업계는 그간 배터리 광물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위해 수급처 다변화와 신소재 개발 등으로 공급망 체질 개선에 나서왔지만, 단기간에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민관 협력을 통해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여전히 절대적인 中 비중…"정부·민간 협력해 활로 찾아야"

FEOC 대상국에는 중국 외에도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있지만, 반도체와 배터리 규제 대상국으로는 사실상 중국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이번 발표는 미국이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중국의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글로벌 메탈·광산 시장조사업체 CRU의 집계를 보면 동력 배터리 제조용 광물에 대한 중국의 점유율은 흑연 70%, 망간 95%, 코발트 73%, 리튬 67%, 니켈 63% 등이다.

배터리 핵심 광물은 중국뿐 아니라 남미 등 다른 지역에서도 생산되므로 산지 다변화는 가능하지만, 배터리 소재 생산을 위해 광물을 제련하는 분야에서는 중국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점이 문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광물 제련은 환경오염 문제와 더불어 임금, 전기료 등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데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이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중국이 우위에 있고, 제련을 국내나 중국 외 다른 국가에서 하기에는 규제 등 현실적 제약이 많아 당장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자 신소재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으나, 이 역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일례로 배터리 음극재 핵심 원료인 흑연을 대체하고자 리튬메탈, 실리콘 등 차세대 소재를 활용하는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나 대체율, 가격경쟁력 등 측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국내 업계가 중국 배터리 관련 업체들과 중국 외 지역에서 속속 합작법인을 세우고 있어 FEOC 관련 규정의 '중국의 합작회사 25% 비율'도 부담 요소이긴 하나, 이는 자본을 추가 투입하는 부담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중국 측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이 있어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 자체는 당장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업계는 북미 배터리 시장 공략에 또다시 난관이 발생할지 몰라 긴장하는 분위기다.

업계 일각에서는 IRA의 보조금 규정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서 미국의 제조 역량을 강화한다는 목적도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자국 업계에까지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할 장치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도 외교적 노력 등을 통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흑연 등 배터리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점유율이 높은 상황은 미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며 "현실적으로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까지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단순하게 정책을 펼 것 같지는 않은 만큼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규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업계 의견을 수렴해 미국 측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한미 고위급 면담 등을 통해 한국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날 발간한 '미 IRA FEOC 해석지침 주요 내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배터리 소재의 대(對)중국 의존도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만큼 협력 중국 기업의 정부 관여 정도에 따라 조달선 교체, 합작 투자 지분율 조정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향후 2∼3년간 어려움 따를 듯"…자원독립 노력에 사활

업계에선 중국 의존도를 최소화하기까지 당장 2∼3년간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리튬, 니켈, 흑연 등의 핵심광물 채굴부터 정·제련 등 가공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간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FEOC 규정 발표를 계기로 공급선 다변화와 소재 자립에 성공한다면 사실상 한중일 3국 경쟁 구도인 배터리 시장에서 최대 경쟁자인 중국을 누르고 승기를 잡을 기회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배터리 소재 업계 관계자는 "2025년까지 만 1년의 시간 안에 미국에 수출하는 배터리 소재의 자원 독립을 어떻게 하느냐가 업계의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핵심 광물 탈중국화를 위한 주요 기업들의 노력에도 한층 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포스코퓨처엠은 100% 자력 투자로 전남 광양 양극재 공장 인근에 양극재의 핵심인 전구체를 연간 5만t 규모 생산하는 공장을 내년에 준공할 예정이다.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한 캐나다 얼티엄캠 산하 연산 3만t 규모의 전구체 공장도 건설 중이다.

또 양극재 핵심 원료인 니켈 조달망을 필리핀으로 확장하기로 하고, 지난 8월 필리핀 광산 개발 업체인 MC그룹의 니켈 전문 자회사 NPSI와 합작 사업 합의각서(MOA)를 체결한 상태다.

포스코홀딩스는 호주와 인도네시아에서 각각 니켈을 생산하고, 아르헨티나 염호와 호주 등에서도 리튬 원료를 확보하고 있다.

이차전지 양극재에 들어가는 전구체를 만드는 에코프로그룹 핵심 계열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최근 코스피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을 생산 시설 확대에 투입, 전구체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아울러 LS그룹은 하이니켈 양극재 전문회사 엘앤에프와 손잡고 전구체 사업을 위한 합작회사(LLBS·LS-엘앤에프 배터리 솔루션)를 만들었다. 지난 10월 국내외 정부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은 LLBS는 새만금 산업단지 5공구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 2026년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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