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금연법 폐지 추진 논란 확산…보건계 "재앙적 조치"
재집권 보수정권 공언…"연정·세수 확보 위해 무리한 결정" 비판도
금연법 도입했던 노동당 "전 세계 언론이 보도…국제적 망신"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뉴질랜드에서 6년 만에 재집권한 보수 정권이 전 정권에서 제정된 강력한 금연법을 폐기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27일 공식 출범한 뉴질랜드 보수 연정이 정책 합의 내용에 금연법 폐기를 담은 것과 관련해 보건 전문가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라디오 뉴질랜드(RNZ)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년간 흡연 문제를 연구한 오클랜드 대학교의 크리스 불렌 교수는 현 금연법에 대해 "특정 나이가 되면 담배를 피워도 괜찮다는 생각을 없애주는 조치"라며 "새 정부가 금연법에 대한 대중과 보건 전문가들의 지지, 국제 사회의 지지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공중보건 전문가 리처드 에드워즈 오타고 대학 교수도 "재앙적이고 끔찍한 조치"라며 "정부가 이렇게까지 후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중 보건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그는 전 세계가 뉴질랜드의 금연법을 보며 비슷한 조치를 검토하는 가운데 이런 결정이 나왔다며 "이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뉴질랜드가 금연 문제를 선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명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뉴질랜드는 2027년에 성인이 되는 2009년 출생자부터는 담배를 살 수 없는 강력한 금연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최근 새 정부는 내년 3월 이전에 이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의 금연법 도입 이후 현재 영국을 비롯해 덴마크와 호주 등도 비슷한 정책 도입을 추진 또는 검토하고 있다.
금연법 폐지 조치가 특히 흡연율이 높은 원주민 마오리족에 더 해로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비정부 기구 아오테아로아 건강 연합의 의장인 리사 테 모렌가 교수는 금연법 모델링 결과 마오리족 생명을 매년 최대 5천명까지 구하는 것으로 나온다며 이 법이 폐지되면 그만큼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BBC뉴스에 말했다.
집권 당시 금연법을 만들었던 노동당도 반발하고 있다.
노동당의 보건 대변인인 아이샤 베럴은 "우리는 흡연이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사실을 수십 년 동안 알고 있었으며, 이번 정부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비난이 이를 보여준다"며 "금연법 폐지 정책이 국제적인 망신이라는 것을 전 세계 언론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세수를 확보하려고 금연법을 폐지하려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싱크탱크 뉴질랜드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담배로 얻는 세수는 전체 세수의 약 1.1%에 달한다.
니콜라 윌리스 신임 뉴질랜드 재무장관은 담배로 인한 세수가 정부의 감세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당인 국민당이 연정 구성을 위해 무리한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도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금연법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곳은 6%의 득표율을 얻은 뉴질랜드 제일당뿐이었다. 현지 언론은 민족주의 포퓰리즘 정당인 뉴질랜드 제일당이 금연법 폐지를 끝까지 고집하면서 국민당이 연정 구성을 위해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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