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자축 장소' 황급히 빌린 네덜란드 극우의 깜짝 압승

입력 2023-11-24 07:00
[특파원 시선] '자축 장소' 황급히 빌린 네덜란드 극우의 깜짝 압승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꿈인지 생시인지) 나도 내 팔을 꼬집어봐야 했다."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 예상 밖 압승을 거둔 헤이르트 빌더르스(60)의 자유당(PVV) 대표가 22일(현지시간) 승리가 확실시된 직후 연설에서 한 말이다.

빌더르스 대표의 발언에서 보듯 네덜란드 정계에서 '아웃사이더'(주변인)로 치부되던 극우 성향 자유당의 이번 총선 승리는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로 평가된다.

자유당은 득표율 23.6%, 전체 하원 150석 중 37석 확보로 1위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사실상 거대 양당 지형이 굳어진 우리나라 독자 입장에서는 득표율 20%대가 어째서 '압승'일까 갸우뚱할 법도 하다.

그러나 분극화된 다당제 특성상 네덜란드에서는 20% 득표율을 넘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이번에도 2∼4위는 10%대 득표율에 그쳤고, 뒤이어 11개 군소정당이 한 자릿수 득표율로도 하원 입성에 성공했다.

네덜란드 총선에서 중도우파 혹은 중도좌파 계열 기성 정당이 아닌 제3당이 1위를 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일부 외신은 짚었다.

초접전일 것이란 예측과 달리 2위(25석)와 큰 격차로 승리한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자유당 내부에서조차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일례로 자유당은 선거캠프로 쓸 장소 대관도 불과 사흘 전 예약했다고 한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4위권에 머물다 막판 지지율 상승세를 타자 황급히 '자축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선거 결과를 두고 이민자 유입 급증, 심각한 주택난, 고물가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한다.

비슷한 이유로 스웨덴, 핀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몰아친 극우 돌풍이 네덜란드에도 상륙한 셈이다.

13년간 연정을 이끌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마르크 뤼터 현 총리의 지난 7월 연정 해산 및 정계 은퇴 선언 뒤, 그의 친정인 집권 여당 자유민주당(VVD)에 그를 대체할 인물이 없었다는 점도 요인으로 지목된다.

과거 극우와 협력을 금기시하던 자유민주당이 이번에는 집권 시 자유당과 협력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자유당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유권자 갈망도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주류 정치인과는 달리 과격한 배타적 민족주의 견해를 서슴지 않고,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겠다고 공약한 '네덜란드판 트럼프' 빌더르스 대표가 급부상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그가 실제로 연정을 꾸리고 총리로 집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네덜란드에서는 새 연정 구성까지 적게는 수주에서 몇 달이 걸린다. 현 연정 구성도 10개월이나 걸렸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비껴간 자유당 승리가 네덜란드 정계는 물론, 유럽연합(EU) 전역에 던지는 함의는 적지 않아 보인다.

빌더르스 대표는 EU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주장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적 기후협약 이행에도 반대한다.

이에 따라 그가 총리로 집권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EU 차원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네덜란드를 포함한 각지의 '우향우' 바람이 인접 국가는 물론,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단 EU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려는 모양새다.

EU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의에 "우리는 네덜란드의 지속적인 EU 참여를 당연히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개별 회원국 선거 결과에 대해선 논평하지 않겠다며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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