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 영국 희소병 아기 치료 위해 시민권 부여(종합)
멜로니 총리 "할 수 있는 모든 것 다할 것"…제2의 알피 에번스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연명 치료 중단 위기에 처한 영국 희소병 아기에게 이탈리아 정부가 시민권을 부여했다고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내각 회의를 긴급 소집해 8개월 된 영국 여자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이탈리아로 옮겨져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이탈리아 시민권 발급을 승인했다.
올해 2월에 태어난 그레고리는 불치병으로 알려진 미토콘드리아병을 앓고 있다. 그레고리는 태어나자마자 노팅엄에 있는 퀸스 메디컬센터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아왔다.
병원 측에선 더 이상의 치료는 아기에게 고통만 안기고 무의미한 일이라며 연명 치료 중단을 권고했지만, 그레고리의 부모는 계속 치료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다툼은 결국 법정으로 옮겨졌다. 영국 법원은 치료 가능성이 없다며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그레고리의 부모는 교황청이 운영하는 로마의 아동전문병원인 제수 밤비노 병원에서 치료를 돕겠다고 나서자 아기를 그곳으로 옮기고 싶어 했으나 지난주 영국 항소법원은 이송을 허용하지 않았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기에게 최선의 이익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영국 항소법원이 이날 오후 3시에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고 판결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이날 오후 2시 15분에 긴급 내각 회의를 소집했고, 불과 몇 분 만에 그레고리에게 이탈리아 시민권을 부여했다. 이날 내각 회의의 유일한 안건이었다.
멜로니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그들은 작은 인디에게 희망이 별로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아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그리고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는 부모의 권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장려해온 멜로니 총리는 아기의 치료 비용을 정부가 전액 부담하겠다고 덧붙였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이탈리아 정부가 그레고리를 이탈리아로 데려오기 위해 최근 몇 주간 영국 정부와 물밑 협상을 진행해왔다고 전했다.
안사(ANSA) 통신은 "이탈리아 시간으로 오후 3시에 생명줄이 끊겼을 여자 아기가 이제 교황청에서 운영하는 로마의 아동전문병원인 제수 밤비노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아버지인 딘 그레고리씨는 "딸이 이탈리아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인류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보여준 이탈리아 정부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일은 2018년 연명 치료를 계속 해야 하는지를 두고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23개월 된 영국 남자 아기 알피 에번스 사건과 흡사하다.
당시에도 제수 밤비노 병원이 연명 치료 지원 의사를 밝히자 이탈리아 정부가 에번스에게 시민권을 발급하고, 환자 이송을 대비해 군용기를 대기시키는 등 조처를 했다.
그러나 영국 항소법원은 에번스에 대한 사법 관할권은 영국에 있다며 끝내 이송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에번스는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한 지 며칠 만에 사망했다.
AFP 통신은 5년 전 알피 에번스처럼 그레고리 역시 이탈리아에서 치료를 받게 될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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