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술탄국 오만의 변신, 디지털 민주주의 도전…"아직은 미완 실험"

입력 2023-10-30 11:30
[르포] 술탄국 오만의 변신, 디지털 민주주의 도전…"아직은 미완 실험"

2년째 부는 모바일 선거 바람…전제군주제 정부, '이미지 개선' 홍보전 총력

정치불신·무관심 돌리는데는 '역부족'…일각선 '부정선거 해소' 의구심도

작년 지방의원 선거 이어 올해 하원의원 선거 확대도입, 현장 둘러보니…



(무스카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술탄국' 중동 오만이 2년 연속 '종이 없는' 모바일 선거 바람이 불고 있다. 디지털 민주주의에 도전장을 던짐으로써 전제군주제 국가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미지 변신 시도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해외 홍보전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선거나 정치에 대한 국민 무관심, 온라인 투표와 관련한 공정성 우려 등이 여전히 감지되는 등 술탄국 오만의 디지털 선거 실험이 아직은 갈길이 멀은 '미완'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요일인 29일(현지시간) 낮 12시30분께 찾은 수도 무스카트의 내무부 청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제10기 하원의원 선거 상황을 지켜보는 공보부 등 관계자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청사 내부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는 1시간마다 선거 현황이 연령별, 성별 등 항목으로 구분돼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유권자가 선거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안타킵'(Antakhib)으로 투표하면 매시간 그 결과가 이 스크린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청사에서 상영된 영상에 따르면 안타킵에 신분증 앞뒤 사진을 올리고 본인 얼굴 사진을 촬영해 본인 인증을 받은 뒤 안타킵에 올라온 후보들 가운데 지지하는 사람의 사진을 클릭하면 투표가 마무리된다. 투표소에 가지 않고 어디서든 한표를 행사할 수 있고, 종이 투표지도 없다.

이날 선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됐다.

오만은 이번 선거 기간 아랍에미리트(UAE)와 일본 등 전세계 기자 50여명을 초청하는 등 온라인 선거 홍보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도 오만을 찾아 그 과정을 지켜봤다.

내무부 미디어팀의 수마야 알 발루시는 기자들에게 "21세 이상 오만인 남녀는 누구나 안타킵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다만 정해진 기간 내 선거인 명부에 (이름을) 등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원제 국가인 오만은 1997년부터 '자문(슈라)평의회'로 불리는 하원의원 90명을 선출직으로 뽑는다. 61개 주(州) 가운데 인구 3만 명 이상인 곳에서는 2명을, 그 미만인 주에서는 1명을 선출한다. 상원인 '국가(다울라)평의회' 의원 85명은 국왕(술탄)이 임명한다.

오만은 지난해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가운데 처음으로 제3기 지방의회 의원 선거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올해 하원의원 선거에 이를 확대 도입했다.

오만에 불고 있는 디지털 선거 바람은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사회 등 발전 계획인 '오만 비전 2040'의 일환이다. 당국은 석유 산업 비중 축소에 초점을 두고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등 정보통신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실제 대면 투표에 인력 최소 8천 명이 필요했던 것에 비해 온라인 선거에는 500명 미만이 투입되는 등 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내무부 미디어팀 관계자는 설명했다.

투표소라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만큼 투표 촉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날 현지 언론은 최종 투표율이 65.07%라고 집계했다. 약 39%에 그쳤던 지난해 투표율에 비해 크게 늘어난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수도 무스카트 시내의 현지 식당과 거리 등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현지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술탄 알 칼바니(38)는 "사무실에 앉아서 투표했다.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디지털 선거에 긍정적 입장을 표했다.

오만은 금요일, 토요일을 주말로 삼는데 이날 선거가 일요일에 열린 만큼 밖에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투표할 수 있어서 편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브리를 선거구로 뒀다.

알 칼바니는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서 다음 선거에도 안타킵을 이용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이번 선거에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면서 "선거는 어디까지나 오만 현지 상황과 관련돼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전제군주제라는 근본적 한계 등의 탓인지 모바일 투표 도입이 국민들의 무관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였다. 투표를 했다는 사람 보다 하지 않았다는 사람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온라인 투표 도입 사실 자체를 여전히 모르는 이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모바일 선거가 제도적으로 부정선거 가능성을 해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자심 알 하라시(26)는 "정치인들은 자기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국민은 신경 쓰지 않는다"며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드르(34·여)도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 투표하지 않았다면서 "온라인 선거와 오프라인 선거가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서는 우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르완(28)도 "교통 체증 등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좋다"며 디지털 선거의 장점을 꼽으면서도 "무스카트에서 나온 후보가 2명인데 둘 다 지지하지 않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안타킵을 사용해본 적 없다고 전했다.

누르(23·여)는 "투표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지 몰랐다"면서 안타킵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누르는 부정 선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정부가 "디지털 선거로 인한 잠재적 문제에 관해서도 설명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 과정 설명을 진행한 내무부 공보담당 발루시는 온라인 선거가 처음 도입된 지난해 지방의회 의원 선거 때 부정선거 관련 의혹이 제기된 적 없느냐고 묻자 "잘 진행됐다"고 답했다. '관련 의혹이 전무(zero)했나'고 다시 묻자 "그렇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 그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할 순 없다. 관련 시비나 문의가 많지는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이번에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오만인은 총 75만3천690명이다. 전체 인구(383만3천465명)의 20%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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