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외교장관회담에서 확인된 '상호의존성'…향후 전망은
'경제적 연결' 두드러져…정치·안보적 대립 속 '최대 교역량'
미국내 디리스킹 전략 전환 가속…신냉전의 특성 부각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중미 두 대국은 이견과 갈등이 있지만 중요한 공동이익 및 함께 대응해야 하는 도전들이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 오후(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한 말이다.
그는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하고, 오해와 오판을 막고, 호혜적 협력을 끊임없이 추구하면, 양국 관계를 건전하고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 궤도로 돌릴 수 있다"라거나 "시간과 사실이 모든 것을 증명할 것이며, 역사는 공정한 입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블링컨 장관도 "앞으로 이틀간 왕 부장과의 건설적 대화를 매우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전문가들은 왕이 부장의 발언 속에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 관계의 속성이 잘 담겨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전개된 동서 냉전 시절 진영으로 나뉘어 협력의 여지를 철저히 외면했던 미국·소련 관계와 달리 현재의 미국·중국 관계는 긴밀히 연결돼있고, 상호 의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양국의 경제적 연결성은 두드러진다. 양국 간 무역량을 보면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지난해의 경우도 6천906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대중국 수입액은 5천368억달러로 전년보다 6.3% 늘었다. 이는 역대 최대였던 지난 2018년의 5천385억달러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국 본토 영공을 침범하자 미국이 F-22 스텔스 전투기까지 동원해 이를 격추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겪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기류를 보여준 셈이다.
또 중국이 막대한 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활용해 미국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 국내에서는 새로운 대중 접근법인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사람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다. 재닛 장관은 지난 4월 존스홉킨스대학 연설을 통해 "미국과 중국 경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공생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고,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기반으로 하는 전방위적 중국 압박이 주류였을 때는 초강대국들의 충돌 프레임인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많이 거론됐었다.
하지만 디리스킹을 강조하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은 패권 경쟁을 하되 과거 동서 냉전과 다른 방식의 경쟁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미중 관계의 미래에 주는 함의를 담고 있다. 세계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미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학자마다 다르다. 세력전이의 관점에서 향후 미·중 관계를 전망할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그동안 3가지로 정리돼왔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좌절시키고 패권을 지속 유지하는 것, 둘째,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것, 셋째,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되 중국의 위상과 역할을 수용하는 비대칭 양극화 시대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의 기류는 대체로 세번째 시나리오에 방점이 찍히는데, 특히 미중 관계가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공존할 가능성이 많이 거론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4일(현지시간) 공개된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미중 경쟁의 최종 상태(end state)와 관련해 "우리는 예측 가능한 미래에 중국이 계속 세계 무대의 주요 참가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설리번 보좌관은 "우리는 미국과 우방의 이익을 보호하고 세계에 공공재를 제공하는 자유롭고 개방되며 번영하고 안전한 국제 질서를 추구하지만, 소련의 붕괴가 가져온 것과 같은 세상을 바꾸는 최종 상태를 기대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경쟁상대인 중국이 구소련처럼 붕괴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미중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미국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미국의 새로운 전략에 따라 중국 내에서도 미국과 대적하고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것보다는 세계질서 속에서 중국의 지분을 확실히 챙기려는 기류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미중 양국은 내달 11∼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조 바이든 대통령 시진핑 국가주석간 양자회담을 여는 방향으로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미중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중 관계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안보적으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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