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필리핀 분쟁 중심엔 2차대전 시절 노후선박
남중국해 좌초 'BRP 시에라 마더' 놓고 신경전 가열
(서울=연합뉴스) 김계환 기자 =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좌초된 채 남아 있는 필리핀 노후 선박이 양국 분쟁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 전했다.
문제의 선박은 지난 1999년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서 좌초된 필리핀 함정 'BRP 시에라 마더'이다.
필리핀은 2차대전 시절에 미국 해군을 위해 건조된 뒤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을 거쳐 필리핀에 인도된 이 선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해병대원을 상주시켜 세컨드 토머스 암초를 사실상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선박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어 필리핀은 주둔 병력에 대한 보급품 공급과 함께 선박 보수를 시도하고 있으나 중국이 올해 들어 적극적으로 이를 방해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커지고 있다.
필리핀은 한동안 친중 정책을 펼쳤으나 지난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이후 친미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자 그동안 'BRP 시에라 마더'호 철거를 요구하던 중국이 올해 들어 더욱 적극적으로 필리핀 보급선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바다 위에 25년간이나 떠 있는 'BRP 시에라 마더'가 노후화로 침몰하거나 붕괴하면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대한 지배권 확보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판단 아래 필리핀 보급선의 암초 접근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에는 레이저포를 이용해 필리핀 보급선을 공격했으며 물대포를 사용해 보급선의 접근을 차단하기도 했다.
지난 22일에는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접근하던 필리핀 보급선과 이를 저지하던 중국 해경 선박이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필리핀의 동맹국인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내세우며 필리핀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양국 선박충돌 이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철통같다"면서 "필리핀의 항공기나 선박을 겨냥한 어떠한 공격에 대해서도 (미국과) 필리핀 간 상호 방위 조약을 발동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국 선박충돌 당시에도 미 해군 구축함 USS 듀이가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이 세컨드 토머스 암초 점령 시도를 한다면 이는 미국에 외교적인 면에서는 물론 군사적인 면에서도 큰 도전이 될 수 있는 분석이 나온다.
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의 세컨드 토머스 암초 점령 시도가 미국과 중국 간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커다란 위험을 안길 수 있지만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에 간여하고 있는 현 상황을 중국이 기회로 인식할 가능성도 있다고 안보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에 더해 중국이 지난 2012년 영유권 분쟁지역인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에 대한 실효 지배에 들어갔지만, 미국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던 사례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필리핀대학의 해사문제 전문가인 제이 바통바칼은 만약 중국이 스카버러 암초처럼 세컨드 토머스 암초마저 실효 지배에 성공하면 역내 미국의 동맹관계와 안전보장에 대한 신뢰성에 균열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미 해군이 함정을 동원해 세컨드 토머스 암초로 향하는 필리핀 보급선을 호위하거나 새로운 구조물 건축 시도 시 이를 보호하는 조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 주장이 결국은 미국과 중국 간 치킨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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