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반백살된 여의도 아파트…'오세훈표 재건축' 순항할까
지구단위계획 두단계 '파격' 종상향으로 사업성 개선…16개 단지 재건축 속도전
한양 아파트 시공사 선정 과열되자 서울시가 '제동'…신탁사 전문성 논란
"재건축 후 강남 시세 넘볼 것", "높은 용적률이 발목" 전망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서울의 '맨해튼' 여의도 재건축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4월 여의도를 금융중심지구로 고밀 개발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기존 노후 아파트 단지에 파격적인 종상향과 용적률 혜택을 부여하면서 여의도가 재건축 사업 추진으로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여의도 일대 아파트는 매물이 회수되고 가격도 단기 급등하고 있다.
다만 최근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일부 잡음이 발생하고, 부동산 신탁회사의 업무 처리에 불만도 제기되면서 재건축 사업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오세훈 시장 들어 부활한 재건축…3종 주거지→일반 상업지로 두단계 '점프'
서울 여의도 아파트 재건축은 1970년대 지어져 준공 40∼50년이 넘은 단지가 즐비한 곳이다. 그러나 강남 일대와 달리 재건축 사업은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기존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서울시장의 의지에 따라 개발 방향이 오락가락하며 재건축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2009년 1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여의도를 전략정비구역으로 묶어 통합 개발하는 안을 발표했다.
여의도 내 3종 주거지역을 상업지역으로 해 고밀 개발을 허용하는 대신 최대 40%에 달하는 공공기여(기부채납)를 받는 조건이다.
그러나 기부채납 비율을 놓고 주민과 갈등을 빚고, 오 시장이 재임에 실패하면서 여의도 개발은 백지화됐다.
이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가 열리며 재건축 사업에 호의적이지 않던 당시 분위기와 '35층 층고 제한' 방침에 묶여 여의도 일대 재건축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다 2018년 박 전 시장의 '대선 프로젝트'로 여겨진 '여의도 통개발'이 추진됐으나, 마스터플랜 발표를 앞두고 집값 상승을 우려한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반대에 부딪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현재 오세훈 시장이 구상 중인 여의도 개발은 2009년 한강 르네상스 사업 추진 당시 계획의 부활이다.
지난 4월 말 공개된 여의도 아파트 지구 지구단위계획은 11개 노후 아파트 단지에 대해 3종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으로 종상향 해주고 최고 200m, 70층 높이의 아파트 건축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과거에 없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 더해졌다.
현재 계획 중인 지구단위계획이 고시되면 현재 3종 일반주거지역 내 아파트 단지들은 '특혜 논란' 한번 없이 종상향이 이뤄진다.
장미·화랑·대교·시범 아파트는 준주거지역으로 지금보다 한 단계 올라가고, 삼부·한강·삼익·은하·광장·목화·미성 아파트는 일반 상업지역으로 두 단계 종상향이 된다.
그간 재건축 사업의 발목을 잡았던 35층 층고 제한이 사라지고 앞으로 준주거지역에서는 최대 400%까지, 일반 상업지역에서는 최대 800%까지 용적률을 높일 수 있다.
대신 늘어난 용적률의 일정 부분은 학교나 오피스·상업시설 등으로 기부채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여의도의 노후 아파트들이 앞으로 10∼15년 내에는 높이 60층 안팎의 마천루 아파트 단지로 변신할 것으로 기대한다.
J&K 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여의도의 경우 기존 용적률이 200% 내외로 높은 편인데 이번 종상향으로 일반분양분이 늘고, 수익성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단지마다 이번 기회에 재건축을 서두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 재건축 추진 속도전…'1호 단지' 한양, 시공사 선정 앞두고 서울시 제동
층수 제한 해제와 종상향의 숙원이 해결되며 여의도 일대 재건축 사업은 속도전에 들어갔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여의도 일대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는 아파트 지구 내 11개 단지를 포함해 총 16개 단지 7천700여가구에 달한다.
오래전부터 신탁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해온 여의도 아파트들은 이번에 신통기획을 신청해 사업 속도를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사업절차만 보면 전체 16개 단지 가운데 유일하게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목화 아파트가 가장 빠르다.
그러나 현재 재건축 분위기는 올해 시공사 선정을 준비 중인 한양(588가구)과 공작(373가구) 아파트가 주도하고 있다.
조합 방식의 정비사업은 올해 7월부터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사 선정이 가능하지만, 부동산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는 신탁방식에서는 시기 제한 없이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한양은 올해 초 높이 최고 200m, 1천가구 규모를 짓는 신통기확안이 확정된 후 가장 먼저 시공사 선정 절차에 나서면서 '여의도 재건축 1호 단지'로 떠올랐다.
다만 포스코이앤씨와 현대건설의 수주전이 과열되면서 대형 변수가 불거졌다.
서울시가 앞서 제척을 요구한 단지 내 한양 상가(롯데마트) 부지를 사업부지에 포함한 KB신탁의 시공사 입찰 공고를 문제 삼아 영등포구청에 시정 지시를 내린 것이다.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은 종상향 계획을 담은 지구단위계획안이 아직 확정 고시되지 않았는데도 종상향을 전제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이에 대해 과열된 수주전에 대한 시의 경고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신탁사의 미숙한 업무 처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여의도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재건축 수주전이 상호 비방과 민원 등으로 혼탁해지자 신통기획과 지구단위계획 등 서울시의 지침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본 서울시가 여의도 재건축 단지들에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보인다"며 "전문가답지 못한 일 처리로 조합원의 피해가 커졌는데, 고액의 수수료만 챙겨가는 신탁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KB신탁은 지난 20일부터 진행하려던 시공사 선정 부재자 투표와 이달 29일로 예정된 시공사 선정 총회를 모두 중단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개입해 시정조치를 요구한 만큼 입찰 공고부터 다시 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며 "현재 사업부지 제척을 원하는 롯데 측의 협상력을 더 키워준 상황이라 상가 부지 매입에 예상보다 더 큰 비용이 투입될 가능성이 커진 것도 변수"라고 말했다.
한양 아파트 재건축이 지연되면 다음 달 20일 시공사 선정 입찰을 마감하는 공작 아파트가 먼저 시공사를 선정하며 '1호 재건축'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우건설과 동부건설이 참여를 준비 중이다.
내년에는 시범과 수정 아파트가 시공사 선정에 나설 전망이다.
시범 아파트는 여의도에서 가장 큰 1천790가구의 대단지로, 지난해 65층 높이의 신통기획안이 나온 데 이어 올해 초 정비구역 지정도 마쳤다. 수정 아파트는 329가구의 소규모 단지로 정비구역 지정을 앞두고 있다.
또 삼부 아파트는 현재 설계업체 선정을 진행 중이다. 이번 주 설계입찰을 마감하고, 12월 16일 설계업체 선정 총회를 선정한다.
◇ "시공사 선정 호재에 석달 만에 5억원 올라"…강남 시세 뛰어넘나
재건축이 본격화하면서 아파트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여의도 재건축 단지들이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실거주자가 아니면 매입할 수가 없어 거래는 잘 안된다.
한양 아파트는 최근 시공사 선정 호재를 타고 10월 들어 전용면적 192∼193㎡의 최저가가 33억5천만원까지 올랐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 주택형의 가장 최근 실거래가는 지난 9월에 팔린 33억원이다. 10월 들어 5천만원가량 더 오른 가격에 시세가 형성된 것으로, 올해 1월 28억원, 7월 29억8천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불과 석달 새 4억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1971년도에 지어진 시범 아파트 전용 118.12㎡는 대지지분이 69.8㎡(21.1평) 정도로 한양 아파트 대형 주택형과 맞먹는데, 현재 26억∼27억원 선에 매입이 가능하다.
한강 조망권의 장점에도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방 4개에 화장실이 1개뿐이어서 실거주가 어렵다 보니 재건축 호재에도 가격이 덜 올랐다는 것이다.
여의도의 한 중개업소의 관계자는 "그나마 다른 아파트는 직접 들어와서 거주하는 '몸테크'가 가능하지만 시범은 그마저도 쉽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오른 것"이라며 "여의도 토지거래허가제의 최대 피해 단지가 바로 시범 아파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이 본격화하면서 앞으로 실거주 여부보다는 용적률과 대지지분에 따라 가격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양 아파트의 기존 용적률은 260%, 상업지역에 있는 수정과 공작 아파트는 300%에 육박하는 데 비해 삼부 아파트는 190%, 시범아파트는 146%다.
재건축 후 용적률은 상업지역으로 종상향이 되는 한양과 삼부는 각각 599%, 543%이며 준주거지역으로 바뀌는 시범은 399%로 계획됐다.
상업지역으로 종상향이 이뤄지는 곳은 60층 이상 초고층으로, 1층에 상가가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형태로 건축된다.
여의도 전체에 마천루 아파트가 들어서는 대신 그만큼 기부채납하는 상업시설 비중도 높을 수밖에 없다.
시장 전문가들은 앞으로 여의도 재건축이 완료되면 강남권 못지않은 선호도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각에서는 여의도 시세가 잠실을 뛰어넘어 반포와 견줄 만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여의도의 한 주민은 "여의도는 양질의 금융기업이 밀집한 곳으로 직주 근접이 가능하고 학교·교통 등 기반시설도 뛰어나다"며 "지금은 노후 단지 이미지가 있지만 재건축이 빨리 진행된다면 서울의 맨해튼 지역으로 몸값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높은 상업시설과 초고층 주거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편의시설 등 정주여건은 좋지만 여의도는 섬지역 특유의 폐쇄성이 있다"며 "대부분 상업지역으로 용적률이 너무 높아 단지가 빽빽하고 일반 주거지역에 비해 주거 쾌적성이 떨어지는 점은 단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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