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굳어지나…"한국 잠재성장률, 올해 2% 밑돌고 내년 1.7%"
OECD 추정치…내년 미국 1.9%보다 낮아 '2001년 이래 첫 G7 하회'
실질GDP, 잠재GDP 회복 못하는 기조도 수년째 장기화
한은총재 "美도 2% 성장하는데 0%대 수용은 소극적…구조개혁해야"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올해 처음 2%를 밑돌고 내년에는 1.7%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저출산·고령화·혁신부족 등 구조적 문제들이 겹쳐 노동·자본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동해도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 경기 과열을 감수하지 않는 한 경제 성장률이 1%대 중후반 수준을 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규모가 월등히 더 크고 성숙한 미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오히려 반등해 내년 우리보다 높은 1.9%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 美·英·伊·캐나다 잠재성장률 반등…한국 12년간 내리막
23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강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최근 20년 한국 포함 주요국 연도별 국내총생산(GDP)갭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우리나라의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을 각 1.9%, 1.7%로 추정했다.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이 잠재GDP고, 이 잠재GDP의 증가율이 '잠재성장률'이다.
OECD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3.5%) 이후 2024년까지 12년간 계속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올해 처음 2%를 밑돈 뒤 내년에는 1%대 중후반까지 내려앉을 전망이다.
주요 7개국(G7)의 올해 잠재성장률은 미국(1.8%), 캐나다(1.6%), 영국(1.2%), 프랑스(1.1%), 독일(0.8%), 이탈리아(0.8%), 일본(0.3%) 순이었다.
내년의 경우 다른 나라의 잠재성장률에는 변화가 없지만 미국(1.9%)이 0.1%포인트(p) 높아지고, 일본(0.2%)은 0.1%p 떨어진다.
2024년에는 결국 우리나라 잠재성장률(1.7%)이 G7 중 하나인 미국(1.9%)보다도 낮아지는 셈이다.
OECD의 2001년 이후 24년간 추정치 통계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G7 국가를 밑도는 경우는 처음이다.
더구나 2020년과 비교해 최근 수년간 미국(2020년 1.8→2024년 1.9%), 캐나다(1.1→1.6%), 이탈리아(0.3→0.8%), 영국(-1.3→1.2%)은 오히려 잠재성장률이 뚜렷하게 오르는 추세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뿐 아니라 조만간 다른 G7 국가들에도 역전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4월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의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이 모두 2%를 웃도는 2.2%로 추정됐다. 코로나19 충격과 함께 2020년(1.3%) 1%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가 빠르게 회복 중이다.
◇ 한은 잠재성장률 추정치, 코로나 거치며 2.2% 내외→2% 내외
한은은 이번 제출 자료에서 조사국이 운영하는 4개 모형을 통한 자체 잠재성장률 추정 범위를 2021∼2022년 기준으로 '2% 내외'로만 공개했다.
한은 추정치는 ▲ 2001∼2005년 5.0∼5.2% ▲ 2006∼2010년 4.1∼4.2% ▲ 2011∼2015년 3.1∼3.2% ▲ 2016∼2020년 2.5∼2.7% 등으로 빠르게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2019∼2020년(2.2%내외)과 2021∼2022년(2%내외) 추정치의 경우 코로나19에 따른 변동성이 완화되는 시점에 다시 확정할 계획이다.
◇ IMF 13년·OECD 5년간 한국 실질GDP<잠재GDP 추정
우리나라 잠재GDP 성장률이 이처럼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실질GDP는 수년째 이런 잠재GDP에도 못 미치고 있다.
OECD 보고서에서 한국의 GDP갭(격차)률은 2020년(-2.9%) 이후 2024년(-0.5%)까지 5년간 마이너스(-)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GDP갭률은 잠재GDP와 비교해 현시점의 실질GDP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실질GDP에서 잠재GDP를 뺀 격차를 잠재GDP로 나눈 백분율 값이다.
GDP갭률이 음수면 해당 기간 실질GDP가 잠재GDP를 밑돈다는 뜻이다. 생산 설비나 노동력 등 생산요소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해석된다.
IMF 보고서에서는 2012년(-0.4%) 이후 2024년(-0.5%)까지 무려 13년간 한국의 GDP갭률이 마이너스에 머물 것으로 추정됐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통 음의 GDP갭률은 해당 국가가 잠재GDP에 도달하지 못하고 경기 둔화나 심하게는 경기 침체를 겪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노동력 감소 상쇄할 혁신 한계"…'우리만 중립금리 하락' 문제도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는 데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잠재성장률을 좌우하는 요소는 노동, 자본, 생산성 혁신인데, 이미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낮고 작년부터 아예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며 "OECD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우리나라에서 노동력 감소를 상쇄할만한 자본투자나 생산성 혁신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앞서 12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 출장 중 기자 간담회에서 "인구 구조 트렌드를 보면 2% 정도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화 때문에 점차 더 낮아진다는 게 일반적 견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이 3∼4% 성장률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미국도 2% 성장하는데 '일본처럼 0%대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소극적"이라며 "노동시장이라든가, 여성·해외 노동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개혁하면서 장기적 목표를 2% 이상으로 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 일반적으로 중립금리도 낮아지는데, 미국 등 주요국의 중립금리 흐름과 한국이 괴리될 경우에 대한 걱정도 있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기조적 물가하락) 없이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자금의 공급과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말한다.
이 총재는 19일 지난 19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결정회의 직후 "미국의 경우 경제가 견고해서 중립금리가 오른다고 하는데, 한국은 10∼20년 인구 고령화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균형 금리도 하락 국면으로 갈 수 있다"며 "우리의 고민은 선진국은 (중립금리가) 오르고 우리는 내릴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한은 내부에서 논의해봐도 답이 잘 안 보인다"고 토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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