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하마스 20시간 감금에도 생존한 할머니…바이든 만나 포옹
극적 생존기로 '희망의 아이콘' 떠올라…"인질범들 배고플까 봐 밥 차려줘"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자택에 침입한 하마스 대원들을 달래 20시간 버틴 끝에 구출된 65세 이스라엘 할머니의 극적인 생존기가 이스라엘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AP 통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날 텔아비브를 방문하는 동안 만난 이스라엘 생존자 중에는 가자지구 경계에서 약 40㎞ 떨어진 마을 오파킴에 사는 라헬 에드리 할머니가 포함됐다.
하마스가 동시다발로 이스라엘 마을에 침입해 기습 공격을 벌인 지난 7일 오전 다비드 에드리와 라헬의 집에 무장한 하마스 대원 5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이들 노부부를 2층 침실에 가뒀다.
라헬 할머니는 수류탄을 찬 하마스 대원 한 명이 자신의 얼굴을 총 손잡이로 내려치는 등 두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를 달랬다.
그는 이후 이스라엘 매체들과 한 인터뷰에서 경찰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고 말했다.
라헬 할머니는 "그들 중 한 명은 나를 보고 자신의 엄마가 떠오른다고 했다"며 "그래서 그에게 '정말로 난 네 엄마와도 같다. 내가 널 도와주고 돌봐주겠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라헬 할머니는 하마스 대원들에게 자신이 당뇨가 있어 인슐린 주사를 가져와야 한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며 그들의 감시망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하마스 대원들에게 그들의 가족에 대해 묻고 차와 쿠키, '제로 콜라' 등을 대접하며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라헬 할머니는 인질범들이 제로 콜라가 아닌 일반 콜라를 원했다면서 "내가 당뇨가 있어서 집에 제로 콜라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음식을 먹고 나자 그들은 훨씬 진정이 됐다"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이들이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잠시 잊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라헬 할머니에게는 이들이 또 배가 고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질범들이 배고파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밥을 차려줬고, 그들은 차려진 음식을 "말처럼" 아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인질범 중 하나가 이스라엘 가수의 히브루어 노래를, 라헬은 이집트 가수의 아랍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감금된 지 20시간가량 지난 8일 새벽 에드리 부부는 구조됐다.
경찰관인 아들 에비아타르 에드리가 집안 구조를 직접 그려 구조대의 진입을 도왔다.
하마스 대원들은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경찰의 총에 사살됐다.
구출 과정에서 집이 파손되고 에드리 가족이 받은 충격도 커 이들 가족은 현재 호텔에 머물고 있다.
이같은 극적인 사연이 전해지면서 충격과 슬픔에 빠진 이스라엘 국민들 사이에서 라헬 할머니는 희망의 아이콘이자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텔아비브 거리에는 라헬의 얼굴과 애국 여성을 상징하는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의 이미지를 합친 벽화가 등장했다.
AP 통신은 일부 이스라엘인들은 라헬을 적군 장수를 살해하기 전에 그에게 음식을 대접한 유대교 성경 속 인물인 야엘(Yael)에 빗대어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라헬은 18일 다른 하마스 공격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텔아비브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을 때 포옹을 나눴다.
NYT는 이날 라헬의 사연을 소개하며 "공포의 순간에서 이 평범한 이스라엘 할머니는 전형적인 할머니다운 행동을 했다"며 "그는 자신의 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권했다. 이는 기댈 데가 필요한 지금 이 나라 사람들의 눈에 띌 만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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