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실험미술 선구자' 이건용,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서 퍼포먼스
1979년 행위예술 대표작 '달팽이 걸음'에 관객들 환호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이끈 선구자로 꼽히는 이건용(81) 작가가 자신의 대표 행위예술 작품인 '달팽이 걸음'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였다.
세계적인 근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한국 작가를 초청해 행위예술 작품을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맨해튼 센트럴파크 동쪽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이날 100여명의 관객들이 5층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이 작가의 퍼포먼스를 지켜봤다.
'달팽이 걸음'은 이 작가가 1979년 처음 선보였다.
미술관의 바닥에 이 작가가 맨발로 쪼그려 앉은 뒤 바닥에 좌우로 선을 반복하면서 반대편 벽까지 전진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된다.
이 작가는 바닥에 수많은 선을 쌓아가게 되지만, 전진하는 과정에서 발바닥에 닿아 일부가 지워진다.
결과적으로 남는 이미지는 좌우 방향으로 반복된 선과 이를 관통하는 두줄의 선이다.
이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 관객들에게 '생명의 속도'에 주목해달라고 발언했다.
이 작가는 "현대 사회는 모든 면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생명의 속도는 느리다"라며 "나는 오늘 생명의 속도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날 구겐하임 미술관 바닥에 설치된 붉은색 목판의 길이는 10m에 달했다.
80대 노작가가 쭈그려 앉은 자세로 쉬지 않고 전진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길이였다.
이 작가는 중간 중간 붓질을 멈추고 관객들과 대화를 하며 숨을 돌리기도 했다.
10분만에 바닥을 가로지른 이 작가가 마지막 붓질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이 작가는 퍼포먼스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1979년 처음 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선을 그리고 지운다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탐구의 의미가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해석의 여지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1970년대 한국 전위예술을 이끌었던 예술단체 'ST'의 공동 창립자로서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조셉 코수스 등의 영향도 받았다.
이 작가의 퍼포먼스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지난달부터 시작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 맞춰 기획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내년 1월 특별전시가 종료되기 전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원로인 성능경, 김구림 작가의 퍼포먼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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