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배터리 소재업체들, 한국·모로코 투자 통해 美 시장 노려"
WSJ "올해 한국·모로코와 합작 계획 공시 최소 13건"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중국 배터리 관련 업체들이 한국 및 모로코와 합작 투자라는 우회 경로를 통해 미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이 증권거래소 공시를 살펴본 결과 전기차 배터리용 원자재를 공급하는 중국 기업들은 올해 들어 한국에서 최소 9건의 합작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총 투자금액은 45억달러(약 6조원) 이상이다.
또 적어도 4곳의 중국 기업이 모로코에 배터리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로코의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인 인산염의 매장량은 전 세계의 70%를 넘는다.
한국 및 모로코 측과 협력을 통해 중국 기업들은 4천300억달러 규모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배분되는 보조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동차·배터리 제조업체들에 원자재를 공급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도 이런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의 배터리 관련 친환경 기업인 거린메이(GEM)의 한 임원은 한국 기업들과 손잡는 것이 IRA 기준을 충족시키고 전 세계적인 전기차 수요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GEM은 지난 3월 한국의 SK온, 에코프로와 내년 말까지 한국에 전구체(양극재의 원료가 되는 물질)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최대 총 9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포드와 현대차를 고객사로 둔 SK온은 미국 내에 공장 두 곳을 가지고 있고 3개를 더 지을 예정이다.
LG화학도 지난달 중국의 화유코발트와 모로코에 리튬 정제 및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협력 계획을 공개했다.
한국 업체들은 중국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주요 소재와 가공 분야 전문성을 접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른 중국 업체들도 한국 합작기업이 국제적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몇몇은 아예 미국과 유럽을 목표 시장으로 꼽았다.
중국 배터리 관련 업체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눈독을 들여왔고 IRA에 따른 보조금은 이런 전략을 한층 더 재촉했다.
자국 내 치열한 경쟁과 공급 과잉 또한 중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찾아 나서는 요인이 됐다.
다만, IRA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외국 우려 단체'(foreign entities of concern)로부터 광물 조달을 2025년까지 끊도록 하고 있는데, 미국 당국이 무엇을 기준으로 우려 단체를 규정할지 정하지 않은 점이 변수다.
중국이 얼마만큼 개입하고 공급망에서는 어느 단계 수준이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에너지 금속 컨설팅 회사 하우스마운틴파트너스의 크리스 베리 창립자는 "이런 불확실성은 이들 합작기업이 결국 보조금을 받지 못할 위험을 의미한다고"고 말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중국이 IRA의 간접 수혜자가 되는 것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드가 정계의 압박으로 지난달 중국 배터리 업체 CATL과 손잡고 미시간주에 세우기로 한 배터리 공장 건립 사업을 중단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화유코발트와 손을 잡은 포스코퓨처엠이 IRA 요건에 미달할 경우 중국 협력사의 지분을 줄이기 위해 합작투자 계약을 수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는 등 미리 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전기차 배터리 4대 소재 분야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미국의 고민이다.
미국과 유럽이 적어도 단기간에는 중국 도움 없이 독자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GEM의 판화 부본부장은 "미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위 공급망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미국도 중국 공급업체들을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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