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빛으로 전자 세계의 창 열다…노벨 물리학상 3인 수상(종합2보)

입력 2023-10-03 21:24
찰나의 빛으로 전자 세계의 창 열다…노벨 물리학상 3인 수상(종합2보)

"빛으로 시간 썰어낸 트리오"…'전자역학 연구' 아고스티니·크러우스·륄리에

'아토초(100경분의 1초) 시대' 전자 움직임까지 잡아내는 섬광 생성으로 미시연구 신기원

의학진단·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 응용…륄리에 "산업에 유용한 도구 될 것"

륄리에, 역대 다섯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2020년 이후 3년만 배출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황철환 김연숙 기자 = 202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의 움직임을 잡아낼 정도로 파장이 짧은 '찰나의 빛'을 만들어내는 새 실험방법을 고안해 낸 과학자 트리오인 피에르 아고스티니(70), 페렌츠 크러우스(61), 안 륄리에(여·65)가 선정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3일(현지시간) '물질의 전자역학 연구를 위한 아토초(100경분의 1초) 펄스광을 생성하는 실험 방법'과 관련한 공로로 이들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륄리에는 역대 다섯 번째이자, 2020년 이후 3년 만에 나온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다.

영국의 과학전문 주간지인 뉴사이언티스트는 "이번 노벨 물리학상이 빛으로 시간을 썰어낸 트리오에게 갔다"고 보도했다.

노벨위원회는 "이 세 명은 인류에게 원자와 분자 안에 있는 전자의 세계(world of electrons)를 탐사할 새로운 도구를 건네준 실험들을 한 공로가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전자가 움직이거나 에너지량이 변화하는 과정을 측정할 수 있는 극도로 짧은 파장을 지닌 빛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선보임으로써 미시세계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것이다.

전자의 세계에선 영점몇 아토초만에도 변화가 나타나기에 일반적인 빛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00분의 1초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을 셔터 속도가 10분의 1초인 카메라로 찍을 수 없듯이, 100경분의 1초 단위로 사건이 변화가 나타나는 전자세계는 그만큼 극도로 짧은 파장의 빛이 있어야 관측 및 측정이 가능한데 이를 위한 방법을 만들어냈다는 데 이들이 한 연구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영국 BBC 방송은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가장 짧은 순간까지 잡아내는 빛으로 전자 세계의 창(窓)을 열어젖힌 실험들에 주어졌다"고 평했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륄리에는 1987년 불활성 가스를 통과하는 적외선 레이저광에서 다양한 파장과 주파수의 빛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현상은 레이저광과 가스내 원자간 상호작용 과정에서 에너지를 흡수한 전자가 빛을 방출하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륄리에는 이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후속 연구를 위한 토대를 쌓았다.

이어 2001년 아고스티니는 250아토초의 파장을 지닌 일련의 연속적 펄스광을 만들어내고 조사하는 데 성공했고, 이와 동시에 크러우스는 650아토초 길이의 파장을 지닌 단일한 펄스광을 분리해 내는 성과를 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들의 공적에 대해 "너무 빨라 이전에는 지켜보는 것이 불가능했던 과정들을 조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노벨 물리학위원회 에바 올슨 위원장은 "이제 우리는 전자 세계의 문을 열 수 있다"면서 "아토초의 물리학은 우리에게 전자에 좌우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음 단계는 이를 활용하는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연구성과가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전자공학에선 물질 내에서 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고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토초 펄스광은 서로 다른 분자를 식별하는데 쓰일 수 있어서 의료 진단 등 분야에도 쓰일 수 있다고 노벨위원회는 설명했다.

아고스티니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소속이고, 크러우스는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륄리에는 스웨덴 룬드대학 소속이다.

국적의 경우 AFP 통신은 아고스티니가 프랑스인이고, 크러우스는 헝가리·오스트리아인, 륄리에는 프랑스·스웨덴인이라고 보도했다. 타스 통신은 아고스티니를 프랑스·미국인, 륄리에를 프랑스인으로 전했다.

이중 륄리에와 크러우스는 이러한 공로로 작년 캐나다 물리학자 폴 코르컴과 함께 이스라엘 울프 재단이 수여하는 울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륄리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이었다"고 털어놓으면서 남은 30분간의 수업을 마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벨물리학상은)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 믿을 수 없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너무 감동받았다. 알다시피 이 상을 받은 여성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매우 매우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작업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매우 근본적인 것으로 전자를 보고 특성을 살펴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훨씬 더 실용적인 것이고, 다가오고 있다"면서 반도체 산업 등에서 자신의 발견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러우스도 스웨덴 뉴스통신사 TT와의 통화에서 "내 동료들은 휴일을 즐기고 있지만, 내일 만나서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1천100만 크로나(약 13억5천만원)가 수여된다. 수상 공적 기여도에 따른 상금 분담은 3명이 3분의 1씩으로 같다.

노벨위원회는 이날 물리학상에 이어 4일 화학상, 5일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전날에는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 기여한 헝가리 출신의 커털린 커리코(68) 헝가리 세게드 대학 교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의대 드루 와이스먼(64) 교수에게 생리의학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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