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스라엘, 사우디에 수교조건으로 핵프로그램 지원 검토"
WSJ "사우디에 미 운영 우라늄 농축시설…성사시 정책 대전환"
부정적 견해 여전…"중동 군비경쟁 우려·완전한 안전장치 불가능"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수교 조건으로 사우디에 민간 핵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 당국자들을 인용해 사우디 내에 미국이 운영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두고 이스라엘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조용히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 핵·안보 최고위 전문가들에게 이 같은 방안과 관련해 미국 측과 협력하도록 지시했다고 이들 당국자는 설명했다.
이 방안이 실현된다면 사우디는 이란에 이어 공개적으로 우라늄 농축을 하는 두 번째 중동 국가가 된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외교 성과를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는 민간 핵 프로그램 개발 지원 외에도 팔레스타인이 제시한 이스라엘의 양보 조건과 미국의 안보 보장 조건 등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로서는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외교 관계 수립에 합의하면 이스라엘을 배척해온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에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득이 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사우디 내에서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방안에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실현된다면 중동 국가들의 핵 능력 개발을 꺼려온 이들 국가의 정책에 대전환을 의미하게 된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마크 두보위츠 대표는 "이스라엘이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을 지지한다면 시작부터 중동지역의 핵확산에 반대해온 나라, 그리고 이란의 농축을 반대하는 데 평생을 바친 총리로서는 급진적인 정책 전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공개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이 지역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의 핵 보유를 반대해 왔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프로그램에 플루토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라늄 농축 등 이스라엘의 핵 개발 의혹을 폭로한 핵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를 18년간 구금한 바 있다.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추진은 이번 수교를 추진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최대 난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전날인 20일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말에 "안보상 이유와 중동 내 힘의 균형을 위해 그들이 갖는다면 우리도 가져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상황을 보기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사우디 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하게 되면 중동 내 군비 경쟁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고, 미국 당국도 다른 대안들도 고려하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WSJ은 전했다.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내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구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찾은 네타냐후 총리를 만났다.
한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는 사우디와의 수교 협상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과 관련해 "핵 이슈에 대해서는 우리는 처음부터 무엇을 할 수 없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견이 맞았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사우디의 어떤 농축 프로그램에든지 많은 안전장치를 넣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사우디나 다른 나라와의 민간 핵 협력에 관해서 행해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미국의 엄격한 비확산 기준을 충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일각에서는 여전히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결국 사우디에 핵무기 개발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집권해 미국의 우라늄 시설을 장악할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 원격 폐쇄 등 완전한 안전장치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두보위츠 대표는 "총알 한 방이면 사우디에서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며 "만약 급진 이슬람주의자가 장악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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