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 사태'에 체면구긴 금융당국…불공정거래 대응 전면 개편

입력 2023-09-21 10:00
'라덕연 사태'에 체면구긴 금융당국…불공정거래 대응 전면 개편

주가조작 세력 척결에 강한 의지…'권한 남용' 부작용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오지은 기자 = 금융당국이 21일 발표한 불공정거래 대응 체계 전면 개편안은 지난 4월 '라덕연 사태' 등을 거치며 현행 시스템으로는 지능화·조직화하는 범죄 세력을 막아내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개편안에는 기관 간 협업체계 강화, 시장감시·조사 등 인프라 개선, 자산동결제도 도입 추진, 강제조사권 확대 등이 총망라됐다.

주가조작 사태로 체면을 구긴 금융당국이 세력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금융당국 권한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 '라덕연 사태·제2 하한가 사태'까지 금융당국 대응 질타

올해 4월 '라덕연 사태'에 이어 6월 5개 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는 금융범죄를 감시하는 시스템에 심각한 구멍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우선 주가조작 세력은 다수 명의의 계좌를 활용해 장기간에 걸쳐 주가를 상승시키는 방식으로 거래소의 이상 거래 적출 시스템을 비껴갔다.

이들 종목의 주가는 1년여간 저점 대비 최고 수백% 이상 급등했으나, 장기간에 걸친 것이어서 최대 100일 단위로 단기 분석하는 현 시스템으로는 적발이 어려웠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검찰 등 불공정거래 대응체계가 분산돼 있어 효과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라덕연 사태 당시 금융위는 언론사 제보 등으로 사건 징후를 처음 인지했으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금감원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져 기관 간 협조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수년간 자본시장이 크게 성장한 반면 금융당국의 불공정거래 대응 인프라 확충이 미미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주식 투자자 수는 작년 기준 1천441만명으로, 3년 전(614만명) 대비 2배 이상 증가했고, 상장종목도 2022년 2천692개로 2013년 1천965개에서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심리·조사 인력은 오히려 줄어왔다.

거래소·금감원·금융위의 심리·조사인력은 2013년 합계 195명에서 2022년 150명으로 45명이나 줄었다. 이에 금감원의 1건당 조사 기간은 2019년 190일에서 2022년 323일로, 조사중이거나 대기중인 사건은 2019년 153건에서 2022년 415건으로 급증했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선진국과 달리 금융당국이 통신기록 확보나 자산동결 등 조사·조치 권한이 없는 점도 초기 물증 확보를 어렵게 하는 한계점으로 꼽혔다.



◇ 기관간 협업 강화하고 자산 동결 등 추진…"재산권 침해 최소화해야"

이런 문제에 따라 금융당국은 ▲ 기관 간 협업체계 강화 ▲ 시장감시·조사 프로세스 개선과 조직·인력 보강 ▲ 자산동결제도 등 다양한 조사·제재 수단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개선방안을 내놨다.

기존에는 별도의 정보공유 시스템이 없이 그때그때 각 기관의 담당 부서가 필요한 정보를 공유했으나 증권선물위원회를 중심으로 기관 간 상시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정보 공유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불공정거래 신고 포상금 지급을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한도 상향하는 등 신고를 활성화하고, 시세조종 분석기간은 6개월·1년 등 장기로 확대해 이상거래 적출기준을 개편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조사 인력을 70명에서 95명으로 이미 늘렸고, 금융위와 거래소는 조사조직 전반의 기능, 인력을 보강하기로 했다.

불공정거래 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안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뒀다.

당국은 법무부와의 협의를 통해 불공정거래 혐의 계좌를 발견할 경우 동결할 수 있는 권한을 도입하는 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과징금 제재에 자산 동결 권한 등이 더해지면 주가조작 세력을 심리적으로 옥죄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러한 금융당국의 권한 강화가 국민 재산권 침해 등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지점이다.

자산동결 권한과 함께 도입을 검토했던 통신 기록 확보 권한이 이번 발표에서 제외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금융위·금감원 공동조사 시 강제조사나 영치권 등을 적극 활용하기로 한 점도 오남용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앞서 민간 조직인 금감원에 현장조사권과 영치권을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권한 위임이라는 감사원 지적 등도 제기된 바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당국의 개선방안은 시장에서 부족하다고 평가받은 부분을 잘 반영한 것 같다"면서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을 동결하는 것은 재산권 행사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서 장기적 과제로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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